내전이 진행 중인 미얀마의 상황이 최근 급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소수 민족 무장단체들이 ‘형제동맹’을 결성하여 총공세를 펼치면서 북동부 국경지역의 미얀마군 전초 기지 수백 곳을 점령한 것이다. 형제동맹의 가세와 함께 민주진영의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의 시민방위군(PDF)이 각지에서 미얀마군을 격파하며 군정을 최대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국민통합정부’에 따르면 현재 저항군은 전체 영토의 60%이상을 차지한 상태다.
만달레이 : 아름다운 도시와 횡행하는 개떼들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도시로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였던 꼰바웅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와 문화의 도시”다. 만달레이 왕궁과 쉐난도 사원 등 수많은 문화유적을 가진 이 아름다운 도시는 쿠테타 이후 전례 없는 유류와 전력 부족 사태로 고통받고 있었다. 지난해 5월에는 미얀마의 극심한 정전사태를 소재로 삼아 노래를 만들어 부른 죄로 미얀마의 유명 래퍼 ‘뷰 하’가 군사정권 산하 법원에서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는 일까지 있었다.
[사진1, 2] 4면이 해자(垓字)로 둘러싸인 만달레이 왕궁과 미얀마군의 초소. 왕궁 안에 미얀마군의 군사기지가 있어 무장군인이 삼엄한 경계를 펴며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군부는 시민들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군인 및 그 가족들은 차량을 타고 드나드는 것까지 허용하고 있다.
모든 호텔이나 상점이 정전에 대비해 자가발전기를 두고 영업 중이었고, 저녁 시간에 오히려 활기를 띠는 동남아 특유의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식적인 통금 조치가 없음에도 저녁 8시가 가까워지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데, 그 이유는 무장군인들이 문이 열린 상점을 돌며 겁박을 가하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 한다.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점령한 것은 ‘개떼’다. 만달레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만달레이 힐의 야경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곳곳에 널브러진 개떼를 만났다. 위협감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기자의 뒤로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탄 젊은 커플이 나타났다. 이 젊은이들은 “괜찮아~ 괜찮아~.”하고 드라마에서 배운 한국어로 우리를 안심시키며 10여 분이 넘게 기자 일행을 보호해줬다. “Your spring revolution will win. Victory!!(너희 봄 혁명은 반드시 승리할 거야. 힘내!!) 기자의 짧은 응원에 환하게 웃으며 돌아서는 젊은이들이 아름다웠다.
낭쉐와 인레 호수 : 인적 끊긴 인레 호수의 적막한 아름다움
쿠테타 이후 외국인에게 철도와 배편을 이용한 이동을 금지한 미얀마에서는 모든 도시 간의 이동은 육로를 통해야만 한다. 만달레이와 인접한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만 미얀마의 ‘5월 광주’로불리며 강력한 저항중심지가 되고 있는 사가잉주의 몽유와를 꼭 방문하고 싶었지만 전투지역이라 검문소가 많아 가기 어렵다는 소식에 인레호수가 있는 낭쉐로 발길을 돌렸다.
[사진3, 4] 인레호수의 수상가옥과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어민들. 보트 투어를 예약했으나 함께 할 관광객이 없어 기자 일행만으로 투어가 진행됐다. 21년 군부쿠테타 이후 재앙 수준으로 급감한 관광객으로 인해 인레 호수에는 적막한 아름다움만 가득했다. 상인들이 오랜만에 만난 외국인 관광객을 친절하고 다정하게 맞이해 줬으나, 군부가 외화 부족을 이유로 달러 인출을 막고 ATM조차 고장나 관광객으로서의 도리(?)를 다 할 수 없었다.
낭쉐로 향하는 국도변에 있는 수많은 검문소를 거치며 마주친 군인들은 대부분 3~40대의 직업군인들이었다. 한때 약 30만 명의 병력을 보유했던 미얀마군은 지난 3년 동안 사망, 탈영 등으로 인해 약 15만 명으로 줄어들었다.병력 충원이 절박해진 군부는 지난 2월 10일,18~35세의 남성과 18~27세의 여성에 대한 강제 징집령을 발표했다. 군사정권의 강제 징집을 피해 나라를 떠나려는 행렬이 이어지면서 수천 명이 여권사무소에 몰려 2명이 숨지는 압사 사고까지 일어났다. 심지어 군부는 허위 구인광고로 청년들을 유인하는 방법까지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은 군부의 통제력이 급속히 약화되며 미얀마 군정이 총체적 위기에 처했음을 잘 보여준다.
[사진5] 만달레이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어린이. 쓰레기통을 뒤져 플라스틱병을 모으고 있다. 양곤, 만달레이 등 많은 도시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구걸을 하는 어린이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인레 호수를 마지막 일정으로 양곤을 거쳐 귀국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야간버스를 타고 양곤을 향해 가는 길 곳곳에 포진한 검문소로 인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군인들은 지나는 모든 차량을 세우고 운전자와 탑승객에게 각종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다. 군부의 중심지인 네피도 인근에서는 아예 승객 모두가 차에서 내려 짐 수색을 받아야 했다. 수십 곳에 이르는 군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2만 짯~5만 짯(1만 원~2만 5천 원)에 이르는 불법적인 통행료까지 갈취해서 물가가 오르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시민방위군(PDF)이 마궤 지역의 한 검문소를 점령했을 때 엄청난 규모의 현금이 발견되기도 했다.
보름 간의 짧은 일정으로 돌아본 미얀마의 현실은 참담했다. 그러나 희망적이었다. 미얀마의 이 순박하고 명랑한 사람들이 군부독재의 폭압으로부터 해방되는 날, 기쁜 마음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다짐하며 아쉽고 미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