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업 신청했더니 업체에서 영업 전화 걸려와
주민 A씨는 지난 1월 4일에 ‘2024년 소규모 농작업 편의장비 지원사업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3월 4일, 면사무소로부터 사업에 선정되어 관련 서식을 우편으로 송부하였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런데 다음 날인 5일에 A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님이죠? 여기 △△농기계인데요. 이번에 면에서 하는 보조사업 됐다고 연락왔지요? 거기에 아직 서류 못 했지요?”
“아직 우편물이 안 와서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편물이 안 와도 오늘이나 내일 여기 오면 견적서를 바로 써 줄 거거든요. 기계를 다 전시를 해 놨어요. 와서 필요한 것 선택하실 수 있게 해 놨거든요. 방문해 주십시오.”
전화를 끊은 A씨는 처음에는 ‘참 친절한 업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연락처와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개인의 이름과 연락처, 지원한 사업 내용까지 세밀한 정보를 업체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공무원 모두가 열람 가능한 개인정보, 유출 경로 파악은 어려워
이 사업은 농업기술센터의 농업정책과에서 담당하고, 각 면사무소와 협업하여 사업 대상자를 취합하고 선정했다. 농업정책과 담당자는 정보를 유출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해당 문서를 ‘온나라’라는 전자결재시스템에 게시하면 모든 공무원이 열람할 수 있는 구조여서 정보유출의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700여 명 공무원 누구라도 손쉽게 해당 정보에 접근이 가능하다. 정보유출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특정하기가 어려운 조건이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하여 농업정책과에서 3월 15일에 △△농기계를 찾아가 정보취득 경위를 물었다. 업체 측은 “마을 이장을 통해 대상자 이름을 알게 되었고, 연락처는 마을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알아냈다.”고 답했다. 그런데 확인 결과, A씨가 사는 마을의 이장은 A씨가 신청서를 제출한 것을 알지도 못했고, A씨의 연락처는 마을 전화번호부에 기재되어 있지도 않았다. 농업정책과 담당자는 “이장의 이름을 말해달라고 했지만 업체에서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며 법대로 하라고 했다.”며 난색을 표했다.
행정에서 취합한 개인정보가 어떻게 유출되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농업정책과는 대책이라며 3가지를 A씨에게 제시했다. 1)개인정보와 관련하여 직원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 2)해당 문서를 ‘온나라’에 게시할 때 비밀번호를 걸겠다는 것, 3)관련 부서 직원이 아니면 해당 문서를 열람할 수 없게 공개범위를 설정해 놓겠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 업체의 사사로운 이익 추구에 쓰이는 일이 재발되지 않을 수 있을까? 유출 경로를 명확히 파악하고 관련자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재발 방지를 기대하기 힘들다.
만연해있는 개인정보 유출, 현대사회에 맞게 감수성 키워야
농업정책과는 면사무소를 포함해서 관련 직원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고 공지해 놓았다.”며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소규모 농작업 편의장비 지원사업에 선정된 군민은 모두 440명이다. 이들 중 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가 A씨 혼자일 리 없다. 440명을 전수 조사하여 업체로부터 연락받은 이들을 추려본다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행정력은 이런 곳에서는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1명의 민원인’에 해당하는 A씨만 ‘별난 사람’이 된다.
우리는 오랜 세월 반복되어 온 일에 대체로 무감하다. 마을 전화번호부에 휴대폰 번호를 포함해 가족관계가 다 드러나 있어도 문제를 못 느끼고, 은행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겠다는 농협의 안내 전화에는 고마움까지 느끼기도 한다. 귀농·귀촌한 사람들은 이런 문화를 황당해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보이스피싱과 같은 각종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큰데도 관행처럼 굳어진 일들은 ‘별난 사람’의 지적이 있기까지 반복되고 문제로 드러나지 않는다.
A씨, 하동군 상대로 고소장 제출
A씨는 “농업정책과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못 하는 무능함인지 안 하는 안이함인지. 또한 이렇게 개인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한 업체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관행도 문제라고 생각했다.”면서 “사실을 제대로 밝혀서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며 군청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71조 제1항에 따르면,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자와 그 정보를 제공받은 자 모두 처벌 대상이 되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