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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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면
67세, 인생의 고개를 하나둘 넘기며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저의 뿌리는 유년 시절의 시골 흙바닥에 닿아 있습니다. 소에게 먹일 풀을 베다 말고 동무들과 뒷동산에서 뛰놀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던 그 시절, 저에게 자연은 정보가 아니라 살결로 부딪히는 실재(實在)였습니다.
부산과 서울이라는 치열한 도심을 거치며 살아온 긴 세월 속에서도 그 감각은 늘 마음 한구석에 살아있었습니다. 쉰둘이라는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현장에서 거친 육체노동을 자처하며, 백두대간의 능선과 인도, 티베트 카일라스, 히말라야로 배낭을 짊어지고 나를 던졌던 것은 어쩌면 그 실재를 확인하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그 무모했던 발걸음들이 저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라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걸어온 이 길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마주한 지금의 세상은 조금 낯선 풍경입니다. 우리 세대에게 시골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자 뜨거운 로망이었지만, 제가 귀농한 이곳은 어느덧 ‘노인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정체된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시의 젊은이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하고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데이터와 확률을 따지며 ‘손해 보는 일’을 피하려다 보니, 결혼이나 연애처럼 상처 입을 가능성이 있는 관계조차 멀리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실제(Real)’를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릿속 ‘가능성(Possible)’에 갇혀 있습니까? 손가락 하나로 세상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 오지를 누비며 땀 흘리는 ‘경험’ 대신, 타인이 정제해 놓은 ‘정보’와 ‘확률’로 삶을 재단하곤 합니다. “저 길은 성공할 확률이 낮다.”, “저 선택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냉정한 수치들이 신념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눈보라 속에서 절대고독을 맛보며 길을 찾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삶의 미묘한 맛’은 결코 데이터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체험을 생략하고 정보만으로 삶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성장을 멈추겠다는 서글픈 선언일지도 모릅니다. 설계된 보상과 확실한 만족이 가득한 스마트폰 속 세상은 안전해 보이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라는 끈을 앗아갑니다. 인생의 행복은 찰나의 쾌락이 아니라, 지리산 하동에서 벼농사를 짓거나 외딴 섬에 들어가는 소박하지만 무모한 도전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의 고요 속에서 깨닫습니다. 자연은 단 한 번도 확률을 따져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비바람을 맞을지라도 씨앗은 싹을 틔우고, 그 고통스러운 실제를 견뎌낸 뒤에야 결실을 봅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내 자식들과 청년들에게 조심스럽게 이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잠시 눈을 돌려, 당신만이 걸을 수 있는 투박한 길을 향해 첫발을 내디뎌 보십시오.”
손해 볼 확률이 높다는 세상의 조언 너머에, 당신의 인생을 통째로 바꿀 결정적인 순간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신념을 가지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자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