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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 책 이야기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분리하지 않을 용기”에 대하여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오션 브엉 지음김목인 옮김인플루엔셜(주)336쪽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마음이란 어떤 종류의 것일까. 통하지 않을 언어로 고통을 토해 내고 사랑을 고백하는 마음 또한.
오션 브엉의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는 영어를 모르는 엄마에게 영어로 글을 짓는 아들이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엄마가 자신의 글을 읽을 수 없었기에 쓰여질 수 있었던,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고통의 기록이자 한 소년의 성장 서사다.베트남 전쟁통에 성노동자로 일하며 딸을 키운 할머니 란, 그 속에서 혼혈로 자라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폭력을 되풀이하는 엄마 로즈. 전쟁의 기억을 안고 미국으로 이주한 가족 안에서 ‘나’ 리틀독은 가난과 폭력, 퀴어 정체성의 혼란을 통과하며 세대를 건너온 상처와 마주한다.
이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과거의 장면들과 할머니와 엄마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들은 섞이며 부서졌다 이어지기도, 사라지기도 하는데 이 파편적인 형식은 가족들에게 일어났던 사건들과 리틀독의 혼란한 심리 상태로 독자들을 밀어 넣는다. 서사적 친절함보다는 높은 문체적 밀도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문장으로 이끌어 가는 이 소설은 방대한 양의 시 한 편을 읽는 것 같다.
“지금껏 저는 저 스스로에게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제가 틀렸었어요, 엄마. 우리는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났어요. 누구도 우리를 폭력의 열매로 오인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그 폭력, 그 열매를 관통했던 폭력은 열매를 망치는 데 실패했어요.”
잔혹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시적인 문장들과 그 속에 빛나는 사랑과 애정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길어 올린 이 작품은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분리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오션 브엉의 어쩌면, 삶을 위한 찬사다. 개인의 상처가 어떻게 보편의 서사가 될 수 있는지를 이 소설은 조용히 증명한다.
[악양면 ‘이런책방’ 화요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