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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

‘정당공천제’는 각 정당이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에 출마하는 후보자를 추천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된 이후 1995년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도입했고, 2006년부터는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를 확대 시행했다.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가 확대시행된 데에는 2003년 헌법재판소의 기초의원 정당공천 금지에 대한 위헌판결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03년 헌재의 이 결정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견해들이 많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이 가져온 폐해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정당정치 실현을 위해서는 정당추천제가 필요하다는 찬성론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에 찬성하는 이들은 △정당이 공천함으로써 후보자 검증을 통해 정책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정당 책임 정치’가 실현된다는 점, △정당을 중심으로 정책 경쟁을 펼치게 되어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을 돕고, ‘지방의회 정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이나 재정적 여력이 없는 후보자가 정당의 조직과 자금을 이용해 정치에 입문하는 ‘정치 신인의 등장 기회’가 넓어진다는 점 등을 찬성의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를 시행한 지 불과 6년이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물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기초단체 후보자 정당공천 폐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미 1995년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 시행 때부터 나타난 문제들이 기초의원에게까지 정당공천을 확대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폐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정당추천제가 지방자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폐지론

첫째, 지방선거 정당공천은 지방자치제를 중앙정치에 예속시킴으로써 지방자치의 근본까지 흔들고 있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권에 예속되면서 지역에서 협치로 해결해야 할 문제조차 중앙당의 정책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 폐단이 생겼다.
둘째, 정치신인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유능한 정치신인들이 정당공천을 통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강력한 조직력과 자금을 갖춘 정당후보를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이 정치신인의 등장 기회를 넓혀주리라는 기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 지방의원 출마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공천권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공천권자의 눈치보기와 줄서기에 급급했다. 이 과정에서 부정한 공천헌금의 수수가 만연하며 정치의 부패와 신뢰 하락이 나타났다.
넷째, 집행부의 정책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당론에 따라 찬반을 결정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지방의회가 대의기관이면서도 지역주민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유능한 정치 신인의 등장을 막아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거대 양당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서 정당추천제는 후보자의 자질이나 능력보다 소속 정당을 보고 투표하게 만들어, 지역 일꾼을 뽑는다는 지방선거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유능한 지역 전문가나 인재들이 거대 양당의 벽에 막혀 출마하거나 당선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정당공천제가 기초의원에까지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실은 찬성론자의 이상적인 기대와는 달리 지방자치의 훼손, 부패의 만연, 대립과 갈등의 정치 심화, 유능한 무소속후보의 당선가능성 봉쇄 등 부정적 결과가 더 크다. 현행 정당공천제가 존재하는 한 지방의회에서 소신있고 양심있는 무소속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기초의회 의원들이 주민과 밀착한 의정활동을 펼치기도 어렵다.

정당공천제가 사라지면 지방정치는 어떻게 달라질까.

공천이란 이름의 ‘권력자의 필터’를 거치지 않는다면 후보는 주민 앞에서 ‘직접 자신의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후보를 발굴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주민 사회로 넘어오면서 주민의 참여가 강화된다. 지역 공동체, 시민단체, 각종 직능단체가 자발적으로 후보를 추천하고, 주민 토론회 등의 검증 절차가 자연스럽게 활성화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선거 절차의 수정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중대한 전환이 될 수 있다.
공천권자의 낙점이 아니라 지역사회 평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므로 ‘지역 현안 중심의 정치’가 가능해지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와 요구가 지방정치로 반영된다. 이는 곧 ‘지방의회의 대표성 확대와 정책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또한 주민의 평가가 당락의 유일한 기준이 되므로 ‘정책실적과 생활밀착형 정치’가 실현된다. 정당 구도와 무관하게 지역사회의 학교나 도로 건설, 복지 서비스 시행 하나하나가 선거 쟁점이 된다. 후보자들은 중앙당의 노선보다 지역 주민의 실질적 요구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공천권자 대신 ‘주민의 눈이 권력’이 되는 셈이다.
공천 없는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된다. 주민들이 직접 발의한 조례안을 추진할 후보를 선거에서 밀어주는 구조가 가능해지고, 이는 곧 풀뿌리 생활정치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의 부속물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무대가 될 수 있다. 주민의 손에 권력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정당공천제의 폐지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