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home
이슈/사회
home

돌아와서야 알게 된 것들

악양 하중대 마을 할머니들과 서선희 씨(가운데)
서선희
악양면
나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하중대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내 고향이고, 스무 살까지 나를 키워낸 삶의 터전이다.
40여 년 전 시골은 누군가 일을 시작하면 온 동네가 함께 움직이던 공동체였다. 어린 나 역시 부모님을 따라 들과 산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일을 배웠다. 쑥이 나면 쑥을 캐고, 제철 나물이 나오면 나물을 캤다. 초등학생이던 우리는 방과 후에 모여 “쑥 캐러 가자, 요즘 이거 값이 좋다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혔고, 온 동네 어른들과 함께 일하며 자랐다. 어른들은 모두 우리의 부모였고, 우리는 서로의 형제이자 가족이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밤늦게까지 어울리던 시간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성장과 함께 우리는 하나둘 고향을 떠났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공이라 믿었고, 돌아오지 않는 삶이 안정이라 여겼다. 나 역시 스무 살이 되어 하동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치열했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뒤, 내 삶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강박과 불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바쁘게 살아갈수록 마음은 공허해졌고,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때 문득, 내가 떠나온 곳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악양에 돌아온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곳이 나의 작업실이자 안식처라는 것을. 왜 나는 이곳의 가치를 몰랐을까. 왜 시골의 삶을 뒤처진 삶이라 여겼을까. 도시만을 향해 달려가던 나의 무의식이 결국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고향에서의 삶은 단순하지만 깊다. 가장 큰 안정감은 사람에게서 온다. 어머니가 계시고,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나의 부모처럼 곁에 있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그때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리고 그분들의 눈에도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다워질 수 있었다. 고향에 정착한 지 3년이 되어간다. 마을회관에 들러 할머니들과 수다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함께 보낸다. 어린 시절 배움을 받던 자리에서, 이제는 작은 도움을 드리는 사람이 되었다. 휴대전화를 켜드리고, 사진을 저장해드리고, 알람을 맞춰드리는 일에도 “천재”라는 말을 듣는다.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오가는 이곳에서 나는 동네 막내딸로 살아간다.
도시에서는 많은 것을 이루고도 늘 공허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부족함 속에서도 풍요를 느낀다. 돈이 없어도 없는 줄 모르는 하루를 산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까. 나는 오늘도 이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비로소,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