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 코로나 사태로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축소되거나 취소되었다. 그 와중에도 지속된 당산제와 산신제가 있다. 이들 행사가 코로나 기간에도 지속된 것은 마을 사람들의 삶과 염원이 깊숙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 화개 의신마을 산신제·당산제
“심마니들도 산에 갈 때 개인적으로 제를 지내고 가잖아요. 1월 2월 산에 가면 순 얼음이에요. 미끄러지기도 하고. 크고 작은 부상들이 많으니까 그런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 다시는 거지. 위안삼아. 그런다고 안 다칠 리는 없겠지만 마음이 편한 거예요.”
의신마을 이장 김정태(72세) 님의 말이다. 의신마을의 산신제는 1월 6일에서 10일 사이에 고로쇠 수액 작업하러 산에 가기 전, 산 입구에서 제를 지낸다.
“우리 마을엔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귀농한 사람은 별로 없고, 젊은 사람 대부분은 여기 태생이고 부모가 여기 사는데, 학교 가고 그러면서 도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지.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여긴 먹고살게 없어요. 우리처럼 산에 가서 헤매고 다녀야 되는데 도시 사람들은 그거 못하거든. 그리고 여긴 다 산이라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농사로도 못 먹고 살거든요. ”
산에 기대어 사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이어간다. 진한 동료애를 바탕으로 한 단단한 결속력이 읽힌다.
“우리 마을은 단합이 잘 돼요. 마을에 일이 생기면 무조건 해결을 해요. 마을에 초상나면 마을 청년들이 상여 메고 다 합니다. 한 집당 한 명씩은 상포계에 들어 있어요. 초상나면 3일장 하잖아요. 3일 동안 끝까지 정리 다 하고 하는 거예요. 전 주민이 다 합심해서 일을 치러내는 거지. 농악대도 있었고, 다들 얼마나 잘 쳤나 몰라요. 아무나 꽹과리 장구 다 잘 쳤어. 새로 집 지으면 가서 지신밟기도 신나게 해 주고, 몇 년 전까지는 달집도 태웠는데 불나는 거 위험하다고 이젠 안 하고, 어르신들도 돌아가시고 그러니까 이제 칠 사람이 없어요.”
의신마을에는 당산나무가 2그루 있다. 하나는 마을에서 1km 남짓 올라간 산속에 있는 굴참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 초입에 있는 느티나무다. 당산제도 2차례 진행된다. 음력 12월 30일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제주(祭主) 혼자 산속 굴참나무 아래에서 지내는 것과 다음 날 아침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지내는 것. 이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제주는 한 달 전부터 몸가짐을 조심히 하고, 부정한 곳엔 가지 않으며 정결하게 찬물에 목욕재계한 후 제를 지낸다. 본래 제주는 그 해에 우환이 없고 모범적이라고 평가되는 가정의 가장으로 선정했으나 요새는 할 사람이 없어 마을 이장이 자동으로 제주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의신마을 정월초하루 당산제
“이거를 언제부터 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태어났을 때부터 어른들이 하고 있던 거였으니까. 옛날에는 무서움 같은 게 없었는데 요새는 나도 무서워. 그래 혼자 안 가고 셋이서 간 게 몇 년 됐어요. 꼭 한밤중에 해야 되냐, 겨울에 추워죽겠는데 찬물로 목욕해야 되냐 말이 있지만, 일단 내까지는 요방식대로 하는 거예요.
먹거리를 나누고 하는 그런 건 유지되지만 노는 방식은 변해가고 있어요. 시대 따라가야죠. 우리 애들이 크면 어른들 제사를 모시니 마니 이런 얘기 하잖아요. 그렇게 가는데 당산제를 모신다 안 모신다, 그것도 인위적으로 애쓸 필요 없는 거예요. 인구가 자꾸 줄어들고 있거든요. 앞으로 20년, 30년 어떻게 장담하겠어요. 동네가 존폐가. 책으로만 남겠죠.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 이런 게.”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한 마음으로 기원하는 당산제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인구 감소, 고령화, 공동체 붕괴 현상과 더불어 사라지게 될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옥종의 은행나무축제에서 어렴풋이 얻을 수 있다.
◉ 옥종면 청룡리 은행나무 당산제
옥종면 청룡리 중촌마을에는 수령이 630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있다. 높이 38m, 둘레 10.6m, 열 사람 정도가 있어야 안을 수 있는 거목이다. 1982년 2월부터 경상남도 보호수로 지정·관리돼 오다 2004년 3월 경남도 기념물로 승격됐다. 임진왜란 때 산모가 나무 안으로 들어가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기도 하는 은행나무는 중촌마을 사람들의 삶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아주 옛날부터 당산나무 저거를 할 때는 일주일 전부터 기도를 해. 장 보러 갈 때도 말을 한마디도 안 해. 그래가 제사를 모시거든예, 내가 21살에 시집와가 이날까지 저기에 정신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 아무리 호이짜 가 와도 여까진 안 와. 양보까지 오고 저기 주포까지 와도 여는 안 와. 그만치 은행나무가 영험한 거라.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기고 사람들 보살피주는 기라. 이 동네 사람들은 그걸 다 알지.”
※호이짜 : 호열자(콜레라)
오랫동안 당산제 준비를 맡아오고 있는 김정자(87세) 님의 말이다. 의신마을과 마찬가지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는 정월 초하루에 지냈는데, 3년 전부터는 2월 초하루에 해. 그 옛날에 정월에 얼매나 춥네. 제사 지낼 땐 목욕을 3번씩 해. 냇물, 그 얼음물에. 지금도 그리 해. 제주도 하고 나무에 새끼줄 거는 사람도 하고 그 밑에 음식 갖다 나르는 사람도 하고. 서이가 다 목욕해야 해. 제사를 잘못 지내면 밤에 은행나무가 울어. 문고리가 들렁들렁해.”
중촌마을의 동신제였던 이 행사는 2000년부터 옥종면의 축제로 확대되었다. 매년 10월 1일 옥종면민의 날에 은행나무 아래에 모여 제를 지내고, 이어서 체육대회를 통해 면민 화합의 장을 연다. 이 행사와 별도로 중촌마을의 2월 동신제는 아직까지 그대로 치러지고 있다.
마을의 당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가 기념물로 지정이 되고, 당산제였던 것이 면민의 축제로 확대된 데에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고, 그 한 가운데에 옥종면 문화재보존위원회 회장 한충영(82세) 님이 있다. 그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고향을 지켜주는 산을 진산이라고 하고, 나무도 유명한 것이 있으면 진목이라고 생각하고 공도 들이고 합니다. 이 은행나무가 진목, 동네를 지키고 옥종면민 전체를 지키는 나무지요...김구 선생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는 건 보통으로 살고 문화적으로는 승국(勝國)이 되라고.” 라며 민족 고유의 문화를 보전해가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옥종면 청룡리 은행나무
문화는 삶의 매순간마다 ‘사는 일’을 지속하는 데에 큰 힘이 된다. 마을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정서가 담긴 문화의 존속은 소중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한 마을의 당산제를 면 전체의 축제로 확대한 옥종면의 사례는 되새겨볼 만하다. 약해지고 사라져가는 마을 문화의 보전과 존속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 볼 때이다. ‘삶의 문화’를 지켜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