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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의 문화예술 정책,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문화예술 생태계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필요하다. 문화기반시설, 공연예술활동, 전문 예술인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문화예술은 다양하고 풍부해진다. 이들의 균형이 깨질 때 문화예술은 위축되고 왜곡된다.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도 이들 요소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데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하동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건물이나 공연장 등 문화기반시설에는 막대한 예산을 투여하면서 정작 공연이나 창작활동, 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미흡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동의 문화예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예술인들을 만나 하동군의 현실을 들어봤다.

하동군 문화예술 예산의 80%가 문화시설 조성과 관리에 쓰여

하동군 문화예술계의 올해 예산은 약 71억 원으로 총예산 7639억의 0.92%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상상도서관’ 조성사업에 50억, 문화예술회관 등 문화시설 관리·운영에 6억 3천만 원이 투입된다. 시설투자와 관리에 문화예술 예산의 80% 가량이 소요되는 것이다. 시설조성과 관리에 과도하게 편중된 예산집행으로 인해 군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문화예술행사는 위축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되어 공식적인 예산지원을 받는 예총조차 군민들이 직접 수혜자가 되는 문화공연이나 전시회 개최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관광에는 문화예술이 따라와야 하는 거거든. 그런데 예산이 없어서 전시회 한 번 하는 게 쉽지 않아요. 우리 예총도 1억 원 조금 넘는 돈이 나오는데 가을에 하는 ‘하동문화제’하고 사무장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축제도 군청에서 관리하는 부서가 다 달라서 분산이 되고. 13개 읍면을 다 찾아다니고 싶어도 예산이 없어요.”(한국예총 하동지회장 서대훈)

문화예술행사에 대한 지원은 5억 원(7.1%)에 불과해

하동군의 문화예술행사는 관광지 상설공연이나 매년 개최되는 문학제 등 외지 관광객을 대상으로한 활동이 많다. 문화예술활동을 지속적인 생활문화로 인식하기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이벤트 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동을 대표할 만한 문화행사랄 만한 게 뭐 있나요? 관광지 중심의 축제나 몇 개 있는 건데, 그것도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현지 사람들이 즐길 만한 문화행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몇 년 전엔 외국 작가 데려다가 행사 다 맡기고 여기 현지 작가들은 밥먹을 때 불러서 들러리 세워서 당황했던 적도 있어요. 아무래도 예산 쓰기도 좋고 뭔가 그럴듯해 보이니까 그렇겠죠. 아, 오죽하면 사람들이 축제도 다 ‘공무원 축제’라잖아요. 하하하.”(K, 미술가, 하동읍)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국적으로 예술인들의 공연이나 전시 등 작품발표 횟수가 7.3회에서 3.8회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데다, 하동군이 관광지 중심의 문화상품으로 문화예술행사를 취급하다 보니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하동군이 이 같은 일회성, 관광 이벤트성 문화예술행사에 지원하는 예산조차 5억(7.1%)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가장 절박한 문제다

예술단체와 예술인 지원에 있어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하동군 문화예술예산 중 예술단체와 예술인에게 직접 지원되는 예산은 3억 7천만 원(5.2%)에 불과하다. 예총 하동지회에 등록된 문화예술인이 350여 명이므로 이 예산이 모두 예술인 지원에 쓰인다 해도 1인당 백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에 불과하다. 하동의 문화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의 어려움과 함께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는 이유이다. (자료 1, 2 참고)
일반 군민과 달리 문화예술인만을 특별히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21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들의 연평균 수입은 695만 원에 불과하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예술인의 가구 총 수입도 일반 가구에 비해 2천만 원 가까이 적다. 더욱이 경상권 예술인들의 예술창작활동 수입은 524만 원에 불과해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또한 경상권은 예술창작 활동 수입이 0원인 예술인도 47.9%로 전국 평균 43%보다 높다. 하동군만을 대상으로 독자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바는 없으나 전국적으로 월 100만 원 수입도 안 되는 예술인의 비중이 86.6%에 달한다는 자료로 볼 때 하동군 예술인들이 처한 상황은 더욱 심각하리라 짐작된다.

하동군의 과감한 문화예술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예총 하동지회뿐 아니라 지리산학교, 지리산 아트팜(Art Farm), 구름마 등 하동의 문화예술단체와 예술인들이 입을 모아 요구하는 바는 단순하다. ‘건물과 공연장 조성 등 하드웨어(Hardware)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각종 예술행사와 개별 예술인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Software) 중심으로 예술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문화예술사업을 지원할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한 게 건물이나 공연장이 아녜요. 지금도 차고 넘쳐요. 있는 것도 다 못 쓰는데요, 뭐. 사람이나창작 활동에 지원을 해야 돼.”(2021년 구름마 레지던시 작가 박길안)
“여기저기 중복되고 분산된 것들을 모으는 통합적인 관리센터가 필요합니다.”(예총 하동지회장 서대훈)
“새로 군수가 부임하면 우선 민·관 합동으로 집행력이 있는 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함께 논의해 보는 게 좋겠죠?”(지리산학교 교사대표 이창수)
“예술가들과 예술활동을 지원할 중간지원조직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공무원들이 자주 바뀌는 것만 문제가 아니에요. 정부의 지원금이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안정적인 조직이 중요하죠.”(지리산 아트팜 캠퍼스 전략기획실장 윤광용)
신임 하승철 하동군수의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정책적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2022년 6월 /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