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의 문화예술을 보면 곧 하동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문화는 삶의 축적물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2002년 “문화는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 문학, 생활양식, 가치관, 전통, 신념 등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으로 정의하였다. 또 예술은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 공연예술(무용, 연극 등), 영화, 미디어아트(사진, TV, 라디오) 등 전통적인 장르뿐 아니라 만화, 게임 등으로 그 분야가 점차 확장되어 가고 있다. 예술이 풍성할수록 문화는 다양해지고 사회는 건강한 활력이 넘칠 것이다. 그렇다면 하동의 문화와 예술은 어떨까?
하동군의 문화예술환경은 척박하다. 전시관이나 공연장도 많지 않고 문화예술행사도 드물다. 심지어 영화를 한 편 보고자 해도 상영작과 상영횟수가 적어서 다양한 영화를 감상하기 힘들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하동군청 문화예술계는 얼마의 예산을 사용하여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중복투자 논란이 있는 상상도서관 조성사업, 50억이나 예산이 들어
2022년 하동군 문화예술계의 전체 예산은 70억 8802만 원이다. 여기에는 군비, 기금, 도비, 국비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전체 예산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하동 공공도서관(가칭 ‘상상도서관’) 조성사업이다.
단일 예산으로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다. 상상도서관 조성사업에 쓰이는 전체 예산은 160억원이며 그중 2022년에 집행되는 예산만 50억 원으로 2023년 하반기에 완공 예정이다. 이 사업은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경남교육청 소속의 ‘하동도서관’이 리모델링을 하여 새로 개관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중복·과잉투자라는 논란이 있었다. 위치 선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도서관은 접근성이 생명인데 군민들의 생활공간과 떨어진 하동공원에 부지를 마련하여 이용객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지금도 도서관 이용객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하동읍에 군청과 교육청이 따로 도서관을 운영하기보다는 상상도서관을 진교면에 짓자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군청에서는 ‘상상도서관은 개방형 숲 도서관으로 군민들이 편히 와서 책도 읽고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에서 문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라 문제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미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논란 속에서 조성되는 도서관이지만 운영만큼은 하동 문화예술의 거점이 되어 군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아트갤러리와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하동군이 직접 운영하는 전시·공연 프로그램으로 문화예술회관의 ‘아트갤러리’(2억 3700만원)와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1억 1176만원)이 있다. 아트갤러리에서는 각종 전시회 개최와 함께 여러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아트갤러리에서 전시기획을 담당하던 전문 큐레이터(학예사)가 다른 지역으로 전출되면서 공석인 상태여서 지속적인 전시기획이 가능할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은 1년에 1~2회씩 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뮤지컬과 연극, 음악회 등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에는 뮤지컬과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아트갤러리,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연 2회) 외에 하동군이 직접 운영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최참판댁과 화개장터에서 펼쳐지는 문화공연이 정기적으로 있다. 이 문화공연은 군민들이 참여할 수 있다고는 하나 군민을 위한 공연이라기보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가깝다.
나머지 문화예술사업은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군민들에게 직접 다가가서 군민들과 어우러지는 문화행사는 몇몇 행사를 제외하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났네’ 200회 특별공연
군민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예술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계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하동군민을 위하여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사람들의 참여가 없다.” 고 하소연한다. 하동읍에 편중된 문화 인프라(기반시설)와 부족한 예산,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는 하동군의 현실 속에서 문화예술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공무원의 곤혹스런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군민들이 찾아와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문화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이 군민을 찾아가는 것은 어떤가? 건물을 짓는다거나 대규모 일회성 행사를 진행하기보다는 13개 읍면의 마을 회관을 찾아 작은 공연을 하거나, 빔 프로젝터와 암막(暗幕)을 들고 마을회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등 군민이 직접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요구된다. 또한 이미 존재하는 작은 도서관을 이용하여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큰 글자 책이나 오디오북을 마련하고, 어린이 도서관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있듯이 마을회관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령층이 많아지고 교통이 자유롭지 않은 하동군의 특성상 읍으로 집중되는 문화활동보다는 각 면별, 마을별로 소규모 문화예술행사를 진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화행사를 기획해도 오는 사람이 없다’, ‘재미가 없어서 안 간다’, ‘사람들이 안 모이니 수준이 떨어진다’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군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적극적이고 생활에 밀착된 문화예술 행사의 개발과 실행이 필요하다. 군민들에게 다가가는 행정, 군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적극적인 문화예술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