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만 짓고 살 순 없다. 문화 예술활동이 있어야 삶이 풍성하다. 일상에서 주민들은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며 하루의 회포를 풀기도 하지만, 농민이 많은 시골의 여건상 ‘텔레비전 보기’가 문화 활동의 주가 된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이슈, 광고, 드라마를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이따금 타국의 문화를 접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 보따리를 마을회관에 모여 밥 먹으며 풀어놓는 것이 농촌 문화예술의 전부는 아닐까? 주민들 생활 속에서 좀 더 다양하고 활발하게 문화예술 활동이 펼쳐질 방법은 없을까?
지난해 알프스 하동 영화관이 오픈했지만, 저녁 6시 이후 상영되는 영화는 극소수다. 이런저런 연극, 예술공연이 열리는 경우가 있지만,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 주를 이룬다.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읍을 제외한 면민들의 경우 접근성이 떨어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면 지역의 주민들은 문화예술과 자연스레 멀어지고 있다.
주민생활과 밀착된 면사무소에서는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돕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각 면사무소 문화예술 담당자를 인터뷰하고 면민들을 취재했다.
[ 각 면 담당자에게 물어본 주요 질문과 공통으로 나온 답변 ]
Q1. 면별 문화예술 관련 계획은 있는가?
A. 면에서 직접 진행하는 문화예술 활동 및 행사는 거의 없다.
Q2.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과정으로 기획, 준비되고 있는가?
A. 평생학습과정으로 운영되는 문화예술 교육이 있다. 매년 1월 정도에 이장님들을 통해 수요조사를 하고, 강사와 강의 장소를 지원한다. 농번기에는 휴강한다.
Q3. 주민 호응도가 높았다고 평가하는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은 있는가?
A. 면별 평생학습과정의 참여가 많아 호응이 좋다고 본다. 그 외에는 축제가 호응이 좋은 편이다.
Q4. 문화예술 행사와 관련하여 주민의 제안이 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A. 제안이 거의 없다. 혹시 있다면, 군의 문화예술과에 예산 지원 가능 여부를 알아본 후 지원 가능하다면 제안 단체와 협의하여 행사를 기획, 준비하고 면민에게 홍보한다.
생활 문화예술로의 전환, 문화소비자가 아닌 문화생산자로 주민을 바라봐야
행정에서는 주민들의 참여가 없어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주민들의 생활을 중심으로 펼치는 작은 활동을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말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듣고 보는 것으로 예술을 향유하던 시대는 지났다. 내가 예술가고 우리 일상에 예술이 녹아 있는 생활예술의 시대이다. 글자를 깨치는 문해교실에서 어르신들의 진솔한 글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시로 태어난다. 어르신들의 소박한 붓질과 화려한 색상이 그대로 담백한 예술이 된다.
마을공동체를 살찌우는 마을 단위의 문화예술 활동은 예부터 있었다. 마을마다 농악대,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가 있었고, 산신제와 당산제가 있었다. 모내기 노래가 있고, 상여 노래가 있었다. 멋들어지게 민요 한가락 하시는 어르신이 마을마다 있었다. 이런 마을 문화가 대부분 사라져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는 마을이 여전히 존재한다.
군행정은 공동체 문화를 지켜가는 마을행사에 정책적으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더 많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당산제나 산신제 같은 행사를 지원하며, 어버이날 잔치나 대동회 때 전문 예술인들을 파견하여 어르신들을 위한 작은 공연이라도 펼쳐 주민들이 신명이 나도록 이끈다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것이다. 주민이 문화와 예술을 소비하는 객체가 아니라 생활에서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문화와 예술은 지켜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조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마을별 문화 활동은 무엇이 있는지, 예술 활동을 하는 주민은 누구인지, 기초적인 지역의 문화 자원조사를 해야 한다. 마을별, 면별로 취합된 정보는 하동군 전체에 더 풍성한 문화예술 활동을 일으키는 자원이 될 것이다. 2020년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구축 지원사업으로 조사된 하동문화현황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하동다움을 만들어 가는 34개의 문화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미 충분한 자료와 아이디어가 존재하지만, 이것을 행정부서에서 활용하고 업무에 적용할 여력은 부족하다.
우리 지역에 있는 문화예술 행사를 몰라
문화예술 활동이나 행사를 주민에게 홍보하는데 좀더 다양한 채널을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본 기자가 악양면의 한 마을에서 마을 스피커를 통해 유성준·이선유 판소리 기념관의 작은 음악회 홍보방송을 접했다. 마을의 안내 방송은 좋았지만 이 방송을 못 듣는 주민에게는 어떻게 알릴지 궁금했다. 다른 마을에는 공연 안내 홍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취재해 보았다. 이장이 외부에 있어 방송을 할 수 없다는 마을도 있었다. 또 다른 마을 주민은 “방송에서 뭐라 하는데 하나도 안 들리던데?”라고 하였다. 주민들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다양하고 적극적인 홍보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악양면에 있는 유성준·이선유 판소리 기념관에서 최근 열린 작은음악회에서 주민들이 악양농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군에서 각종 행사를 페이스북 페이지에 홍보하고 있긴 하지만, SNS에 익숙치 않은 노년층이 많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홍보 방식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개별 주민의 관점에서 소식을 받아 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면 단위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만들어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알리는 방식이나 마을별로 이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마을 단체 카톡, 문자 홍보 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 하동군에서 코로나 방역상황을 알려주는 문자 알림 시스템을 면 단위로 도입해 보는 등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