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0시 시점으로 전어의 금어기(5월-7월 15일)가 끝이 났다. 즉 전어잡이가 시작됐다는 말이다. 7월 16일 나팔마을 어부들이 잡은 첫 전어는 연하고 뼈가 부드럽다. 전어사리(새끼전어)는 날이 갈수록 점점 그 맛이 더 해지면서 가을이면 살이 오르고 지방질이 많아져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전어가 제철인 9~11월에는 다른 물고기의 3배에 달할 만큼 지방이 풍부해진다. 세꼬시(뼈째 써는 전어회)는 대략 여름 중반이나 늦여름 경에 먹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전어구이가 맛있기로 유명하지만, 전어사리회는 세꼬시나 초밥으로 유명하다. 가을 전어구이는 보통 머리부터 씹어서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데, 고소해서 ‘전어 머리에 참깨 서 말은 박혀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전어는 수심이 얕고 물살이 빠른 지역, 특히 삼각주 부분에 많이 산다. <임원경제지>(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영농방법 및 농업 정책 등 농촌의 생활전반을 다룬 책)에 따르면 ‘제철 전어 가격이 한 마리당 비단 한 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하며, 최근에는 돈 전자를 써 ‘전어(錢魚)’라 쓴다고도 한다. 하동군, 삼천포, 통영시, 진해구 등을 중심으로 한 남해 지역이 전국 전어 어획량의 4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전어는 한국인에게 단백질과 칼슘을 공급하는 효자 생선일 듯하다.
금성면 나팔마을 주민들이 수산물 판매장에 모여 용왕기원제를 올리고 있다.
7월 16일 금어기가 풀린 날, 나팔마을 수산물 판매장에서는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기원제’가 열렸다. 나팔마을 이장 김광춘(65) 씨는 “이번에는 ‘용왕기원제’로 이름을 붙였는데 용왕제를 지낸 지는 약 20년 정도 된 것으로 안다”며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1억 정도를 투자해 이 수산물 판매장을 세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팔마을 주민들은 이웃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첫 배로 잡은 전어를 함께 나누며 올해도 많은 고기를 잡고, 주민들이 건강하고 안녕하기를 기원하였다.
우리나라 ‘용왕제’의 역사는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는 사해 사독제, 조선시대에는 용신제를 지냈다는 기록을 통해 바다와 물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영조 47년에 간행한 <고사신서> 권6의 ‘국조축전’에는 ‘동해의 양양, 남해 나주, 서해 풍천, 북해 경성에서 해신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어촌에서는 용왕굿이나 용왕제를 지내면서 어선의 무사고와 풍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바닷가 마을의 주민들은 개인적으로 용왕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2월 하순, 만조 시 거행되며 해변에 나가 제물을 차리고 동서남북에 절을 하고 제물을 조금씩 바다에 던진 후 소지(燒紙)를 올리는 것이다.
농촌 지역에서는 강이나 못, 우물 등지에서 생활과 농사에 필요한 물이 풍족하기를 기원하면서 수신인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대부분 마을에서는 공동 우물을 사용했는데, 매년 우물을 관리하면서 물을 다스리는 용왕에게 마을 제사를 지냈다. 상수도가 보급되고 마을 공동 우물이 유명무실해지면서 농촌의 용왕제는 사라졌다. 마을마다 올리던 당산제나 용왕제 같은 전통이나 풍습이 점점 형식도 간소화되고 사라지는 경향이다.
나팔마을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쏙’을 잡고 있다.
하동군 금성면은 경남의 최서남단으로 섬진강 하류와 남해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어촌혼합지역이다. 광활한 갈사만 간척지를 배경으로 동쪽으로는 하동화력발전소가, 서쪽으로는 광양제철소가 있다. 금성면에 있는 나팔마을은 섬진강이 흐르는 소리 때문에 독특한 이름을 갖게 됐다. 섬진강 서남단에 있는 마섬과 마을 사이에 섬진강이 흐르는데, 강폭이 좁은 곳을 나팔목이라 했다. 썰물 때 이 곳에 강물 흐르는 소리가 나팔 부는 소리 같아 나팔마을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금성 간척사업으로 담수가 부족해져 해태양식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고, 담수 확보를 위해 강 한가운데 있던 암초를 없애버리게 됐다. 그 결과 더 이상 나팔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팔마을에서 바라본 광양 제철소
나팔 마을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관하는 ‘2022년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2025년까지 4년간 국·도비 등 19억 4천만 원을 들여 마을안길 정비, 나팔공원 정비, 집수리 등 여러 개의 세부사업을 추진 중이다. 나팔마을은 고령자 거주 비율이 높고, 주변이 공단으로 둘러싸여 대기 및 환경오염의 우려가 큰 마을 중 하나다. 나팔마을이 속해 있는 갈사만은 2003년 장밋빛 꿈을 안고 ‘갈사만 조선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시작했지만 군수가 3번이나 바뀐 지금 시점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용왕기원제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줄곧 이곳에서 살았는데 너무나 고생스러웠던 옛날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용왕기원제’를 지내는 갈사만 주민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오늘도 무사히 고기를 잡고, 농사도 풍년이 되게 해 주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