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창수
불현듯 시간 나면 마을 길을 걷습니다. 걸음걸이가 빠른듯, 느린 듯하며, 게으른 듯, 부지런한 듯. 어슬렁거리며 골목길 따라 걷다 보면 많은 이들이 거쳐 간 삶의 흔적들이 눈에 듭니다. 마을 입구, 정자나무 그늘 깊은 곳에서 정겨움을 켜켜이 쌓은 구판장. 동네 어르신들 모여 막걸리 기울이며 시끌벅적했던 사랑방. 두툼한 알사탕을 입에 넣고 친구들에게 우쭐하게 어깨 세우는 아이들 놀이터. 이젠 찾는 이 드물어 빈 시간만 가득 쌓여갑니다. 막걸리 기울이던 어르신은 세상을 버렸고, 알사탕을 빨아 먹던 꼬마들은 논에서,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가 된 지금. 세상은 바삐 가고 추억은 사라지지 않아 마음이 흔들거립니다.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사라진 빈 의자는 고적함이.
서까래 내려앉아 허물어진 옛집은 쓸쓸함이.
녹슨 양철지붕의 끄트머리는 처절함이.
묵은 장작이 제 몸 불살라 사라지는 처연함이.
구석구석에서 스러져가는 시간의 흔적들이 가볍지 않습니다.
혹시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아직은 남아있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발걸음이 정처 없습니다.
이창수
사진가, 지리산학교 대표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