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땅을 일구고 산 늙은 어머니들에게 이런 표현을 들려주고 싶다.
단풍은 나무의 겨울나기를 위한 과정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는 잎을 떨굴 떨켜(이층)를 형성한다. 잎자루에 떨켜가 형성되면 수분 공급이 끊어지고 당연히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초록색 엽록소가 파괴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처음부터 있었으나 엽록소보다 양이 적어 눈에 띄지 않았던 노란색, 주황색 카로티노이드계 색소가 드러나고 붉은색 안토시아닌계 색소가 합성된다. 그것이 단풍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건 그 색깔 때문만은 아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처럼 단풍은 떠나기 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을 낸다. 그 빛은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나는 그래서 긴 세월 땅을 일구고 산 노인의 주름을 단풍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평생의 이야기가 담긴 주름, 그 주름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생태해설사로 활동하다 보면 보람을 크게 느낄 때가 많은데 특히 몸이 불편하거나 지적 장애가 있는 분들과 함께할 때면 더욱 그렇다. 내가 함께함이 그들에게 큰 기쁨이 되면 그것으로 얼마나 충만해지는지. 그리고 노인들과 함께할 때다. 평생 하동에 살면서도 하동의 관광지나 좋은 곳을 못 가보신 어르신들이 많다. 하동의 진짜 주인은 관광에서 소외된 채 사는 거다. 그래서 하동 생태해설사회에서 하동형 DMO(지역관광 추진조직)의 도움으로 11월에 두 차례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하동을 관광시켜드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르신들과 함께 재미난 퍼포먼스도 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장미꽃 조화를 귀에 꽂고 손팻말을 들고 외쳤다. “우리가 하동이다. 꽃보다 하동 할매!” 너무 감격스러웠다.
우리는 감히 이야기했다.
“꽃보다 어머니들의 주름이 더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건 한순간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한 세상을 살아낸, 때론 고통스럽고 아프고 아름다운, 힘든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오신 세월의 흔적입니다”
나중에 한 할머니가 내게 이야기했다.
“젊은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니 얼매나 고맙든지. 늙어서 어데 댕기는 것도 부끄럽다 생각했더만 인자주름 있어도 당당히 댕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대요”
나를 돌아본다. 어머니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놓고 정작 나는 깊어지기 시작한 주름에 자주 신경이 쓰인다. 마음과 몸이 곧잘 따로 논다. 언제쯤이면 나도 흐르는 강물처럼 순해질까? 골 깊고 주름 가득한 내 얼굴을 상상해 본다. 그때는 주름 사이로 지혜가 가득하면 좋겠다. 아름다운 단풍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줄어드는 엽록소, 마침내 드러나는 카로티노이드계 색소들, 떠날 준비를 하는 단풍.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박남준 시인은 이야기했다. 놀랍지 않은가? 떨어지기 직전의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게.
정명희
풀과 나무를 좋아하고 숲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서 형제봉 자락 악양 구치골에 살고 있다. 숲이 전하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삶을 사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