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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고 있는 농부 할머니를 만나다

하동에는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사는 분들이 많다.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은 도시로 내보내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할머니들 중 한 분을 만나본다.
해거름 무렵에 농부할머니 여도남(87세)님의 댁을 찾았다. 할머니는 일찌감치 저녁을 드시고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와 나눈 대화중에 할머니의 말씀만을 모았다.
여도남 할머니
“왔는가? 내 허리가 아파서 앉아서 맞이함쎄. 어여 들어와 앉게. 작년에 허리 수술을 하고 다리가 아파서 걸음을 못 걷겠구마. 젊어서 일만 해 놓아서 그런지 자꾸 아프네.”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캐. 내가 뭐 하는 줄 알믄 아들이 난리나

#농사
농사 짓는 거라고는 취나물 밭하고 이것저것 다 해서 세 마지기(600평) 쯤 되는디 젊은 사람들이 ‘아지매는 만날 죽겠다면서 많이 한다.’ 고 하네. 농사일은 살살 하믄 되것는데, 거기까지 가는 걸음을 못 걸으니 힘들어. 다리허고 허리가 아파서. 윗집 할매는 90살인디 꼼짝도 못허고 목욕차 오고 도우미 두고 방 안에서만 또리또리해. 근데 나는 방 안에서만 가만히 있으면 못 쓰겄는디. 아파도 살살 걸어 댕겨야돼. 그래야 좀 덜 아파. 근데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캐. 내가 뭐 하는 줄 알믄 아들이 난리나.
#수입
돈 나오는 거는 기초연금으로 나라에서 주는 돈 30만원에 밭일해서 버는 돈 합치면 다달이 50만 원쯤 될 끼라. 근데 그거 가지고 병원만 댕기도 돈이 하나도 없어. 아들들이 다달이 얼마씩 주니까 그 돈 가지고 살지. 돈이야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되는 거여.허리고 무릎이고 안 아픈 곳이 없는디, 일이 하고 잡아. 꼭 허고 잡단 말이여.
#일
아침에 동트면 일어나서 밥 묵고는 나가. 밭에 갈 때는 마실거나 하나 가지고 가고 그래. 나가믄 뭐 안 먹고 잡아. 하루 종일 밭에 있다가 해가 질 때가 되면 집에 오지. 비가 오믄 쉬고, 비가 안 오면 일하러 가.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다마는 참 부지런하오. 일을 안 허고는 안 돼. 옛날부터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봐. 뼈따구 부러지도록 일을 했지. 허리고 무릎이고 안 아픈 곳이 없는디, 일이 하고 잡아. 꼭 허고 잡단 말이여.
#놀러온 서울 사람
이웃집에 3년만에 친구가 왔다데. 서울서 왔다던디 제피순을 좀 따 갔다 카더라고.그래가 가 보니 제일 큰 나무에 있는 순을 한 개도 없이 다 따가버렸어.깻잎도 싹다 따묵어버리고. 그거 따다가 팔아서 생활비도 하고 나도 묵는디, 어째 한 개도 안 남기고 다 따 묵었어. 직접 심어서 따 묵지, 와 넘의 것 따 묵을꼬.내 씅질이 나서... 따 묵지 말라고 울타리를 쳐 부려야 되나...
#복지
요양보호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2시간씩 와서 살림해 준다 하데. 목욕차도 집 앞에 오고. 나는 요양보호사도, 목욕차도 다 필요 없어. 생활지도사는 일주일에 두 번씩 우리 집에 오는데 내가 살아있나 죽었나 보러 오데. 혼자 있으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그거면 됐지.
#여행.
외식나는 딴 데 구경가기 싫어.아들이 저기 놀러 가 보자 그래도 난 안 가. 맛있는 거 묵고 잡은 것도 없어. 아들이 식당 가자고 그래도 나는 즈그가 반찬해서 그냥 집에서 해 묵는게 좋지 식당은 안 가고 잡아.
#운동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가 뻣뻣해서 아픈데 동네 사람들하고 같이 동네를 걸으면 좀 괜찮아지더라고. 운동하는 셈 치고 목욕탕도 걸어가고 밭에도 걸어 다녀. 읍내에 볼일 보려면 100원짜리 택시가 있더라고. 그거 타고 다니지.

밥주지, 약주지, 주사 놔 주는데 어째 죽을 끼라. 거기 안 가야 죽어. 병원에도 안 갈란다.

#요양원
이웃에 사는 형님은 다리랑 허리를 못 써.그래서 요양원에 갔어. 정신이 말짱하고 그렇대. 거기 있으면서 밥 주지, 몸을 좋게 하는 약 주지, 아프면 주사 놔 주는데 어째 죽을끼라.거기 안 가야 죽어. 내가 요양원에 가면 자식들은 돈 들고 나는 얼릉 안 죽고.그라믄 우짤꼬.  요양원은 안 가고 싶소.
#치매
치매가 걸리믄 어쩌것니. 미느리가 어찌 시어매 보겠소?내가 미느리라도 시어매 못 보겄는디.뉘가 시어매 볼끼고. 이웃집에 아들이 치매 엄마를 봐. 엄마가 정신이 없어서 소리를 빽빽 지르는데 아들이랑 만날 싸워. 그 집 아들이 “아지매, 미느리가 이런 거 하루나 보것소. 나는 아들이니 찌찌고 싸우며 보지.”그라데.
#병원
허리 수술하고 아파서 꼼짝도 못해서 아들이랑 병원을 갔어. 검사해 보니 뼈가 금이 가 있다데. 그래서 골다공증 약을 맞았지. 여섯 달 맞으라는 걸 두 달만 맞았어. 아들들 돈을 어찌 빼 쓰노. 빌어먹을! 죽을라믄 죽고. 병원에도 안 갈란다.

어떻게 살지는 걱정이 없소. 어떻게 죽을지가 걱정이지

#죽음
영감이 세상을 버린지가 벌써 9년째라.세월이 벌써 그렇네. 그 때 비해서 세상이 좋아져서 사람들이 훨씬 정정 하데.그래도 나는 들어 앉을까봐 무섭다.그리 되면 죽어야돼.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딱 사흘만 아프고 죽었으면 좋겠소. 자슥들 애 안터주고 가는게 꿈이라.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가는거.그거 밖에 걱정이 없소. 난 인쟈 어떻게 살지는 걱정이 없소. 어떻게 죽을지가 걱정이지.
여도남 할머니의 집
인터뷰가 끝나고 일어서는데 허리와 다리가 아프시다는 여도남 할머니는 한사코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집 밖까지 나오셔서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려다 보셨다.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마음 깊이 빌었다.

2021년 6월 /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