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제대로 흐르면...물장사를 하려면 하구에 사는 주민이나 생태계를 먼저 살려놓고 하든지 해야지요.”
어민회 대표 이금길씨 인터뷰
총 길이 212.3km 섬진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에 이어 국내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다. 하동군 내 시작점은 화개면 탑리, 종점은 금성면 갈사리이다. 하동군 전 지역에 넓게 흐르는 섬진강, 그 강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 중 어민회 대표 이금길(58세, 목도리 하저구 마을 거주)씨를 만났다.
하저구 마을 선착장
국대 최다 재첩 서식지 하동, 없어서 못 파는 재첩
“30년 전 정도부터 재첩에 대한 어업권과 일반내수면 어업이 다 양성화되었어요. 어업권이 있는 재첩어민은 350명 정도 될 겁니다.” 이금길씨의 말이다.
하동군의 자료에 따르면 두곡, 읍내리, 광평, 신비, 목도, 화목, 화송 7개의 어업계에 388가구, 663명(겸업 포함)이 재첩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2020년 하동군수산업협동조합 어촌계 분류 평정 및 현황 통계)
재첩의 수확 시기는 4월초부터 7월 장마 전, 9월초부터 11월 초까지이다. 여름에는 장마로 민물이 많아져 재첩이 맛이 없고, 겨울에는 땅 속 깊이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채취가 어려워 1년에 6개월 정도만 잡는다. 채취한 재첩은 직접 가공을 하거나 가공공장에 넘긴다. 보통 하루에 5말에서 10말 정도(1말= 30kg)를 채취하고, 1말이 8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 어민의 80%가 가공을 겸하고 있어 마진율은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외부에 판매가 안 됐어요. 아주머니들이 강에서 재첩 잡은 걸 솥 걸어 삶아서 장에 가지고 나가 보리하고 바꿔오는 물물교환 식이었지요. 90년대부터 가공이 시작되면서 2000년대부터 재첩공장이 조금씩 들어서고 활성화됐습니다. 지금은 전국으로 팔리고, 수출도 해요.”
낙동강이 오염되면서 국내 최다 재첩 서식지가 부산에서 하동으로 옮겨옴에 따라, 하동 재첩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재첩국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바다화되고 있는 섬진강, 줄어드는 재첩 서식지
“내 어렸을 때는 요 앞에가 다 모래톱이었어요. 광양을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었다니까. 물도 얼마나 좋았는데. 목마르면 바로 떠서 먹었어요. 광양에서 식수로 떠가기도 했어요. 그 때 있었던 모래톱이 지금도 있었더라면 하동의 관광명소가 됐을 거예요”
섬진강댐, 주암댐과 같은 대형 댐들이 들어서고, 모래 준설 작업이 광범위하게 진행됨에 따라, 강물의 수량은 줄고 바닷물이 계속 위로 올라와 재첩 서식지는 줄어들고 있다.
“뻘이에요 죄다. 주암댐 설치 전에는 망덕포구가 주요 서식지였는데, 지금은 요기 하저구 앞에서밖에 안 납니다. 그나마도 작년에 수해가 나서 싹 쓸려가버렸어요. 지금 들어가면 바닥에 다 돌이야. 재첩이 없어요.”
“이제까지 섬진강에 대한 데이터가 하나도 없습니다. 염도가 얼마인지 기록하고, 기준을 마련해서 얼마 이상이면 방류량을 늘리고…. 이런 댐 관리 메뉴얼도 없어요. 데이터도 마련하고 피해조사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섬진강이 제대로 흐를 수 있게끔 합당한 방류를 해 달라고도 했지요, 수자원공사랑 영산강환경유역청에. 2년째 조사 중이에요.”
5분의 1로 줄어든 재첩 서식지, 어민 간 갈등도 빈번하게 발생
재첩 수확 방식은 도수망(손틀방류, 사람이 직접 채취)과 형망(배에서 그물로 채취)의 2가지 방식이 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등재된 도수망은 개인에게 허가권을 주고, 형망은 어업계에 권한을 준다.
“개인 간 어업권을 사고 파는 일이 많아요. 어떤 경우에는 건당 1000만원에 거래가 되기도 해요. 그렇게 어업권을 산 개인은 어업계에서 통제가 안 됩니다. 어업권 장사만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동에 안 사는 사람도 있구요. 행정에서는 개인 간 거래라 문제가 없대요.”
강에 들어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지켜가며 여러 사람들과 얽혀서 작업을 해야 한다. 함께 세운 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현장은 매우 혼잡해지고 균형은 깨진다. 하동군의 감시와 조정의 역할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강이 제대로 흐르면...
“하루도 편하게 조업하는 날이 없다”는 이금길씨는 “하동군이 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내수면 어민들끼리 반목하지 않게 신경 썼으면 좋겠고, 섬진강에 댐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강물만 제대로 흐르면 재첩은 또 금방 생기거든요. 농업기반공사, 수력발전소, 수자원공사가 서로 자기가 강의 주인이라면서 물장사를 하고 있어요. 강물의 주인은 섬진강 주민이지요. 물장사를 하려면 하구에 사는 주민이나 생태계를 살려놓고 하든지 해야지요.” 라고 말한다.
물만 제대로 흐르면 재첩은 언제든 왕성하게 번식한다. 하동은 섬진강 하구의 개발 없이 비교적 청정한 생태를 유지하며 국내 최대 재첩 서식지로 부상하고 있다. 그 명성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명성 속에, 우리 어민의 삶과 섬진강의 운명이 멈추지 않고 건강하게 흐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