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금남면 주민
2021년에 제정되어 실행 중인 ‘경남도마을교육 공동체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는「평생교육법」제5조와「청소년 기본법」제48조에 따라 “학교, 마을, 지역사회가 연대하고 협력하는 교육생태계 조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마을교육공동체’란 “학교와 마을이 학생을 함께 키우고 배움터가 되도록 학교와 마을, 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협력하고 연대하는 공동체”다.
이러한 시도는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입시 위주의 교육 프레임을 벗어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 아래 학교, 지역사회, 교육청이 소통하고 협력하는 신선하고도 건강한 노력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꾸준히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고도 행복하게 성장해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경남의 한 기독교 보수 시민단체 주도로 이 건전한 마을교육공동체를 아예 없애려 분투 중이라 한다. 그냥 노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수 일색의 경남도의회 의원들에게 압력을 넣어 아예 ‘경남도마을교육공동체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를 없애려 한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성교육을 하거나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것도 못마땅하게 본다. 심지어 마을학교나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좌경화” 교육을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초등생에게 무슨 “환경 교육”이 필요하냐고도 할 정도다.
대한민국 헌법 19조는 양심의 자유를, 20조는 종교의 자유를, 21조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그리고 22조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기에 아무리 보수 단체라 하더라도 나름의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과연 건강한 철학에 근거하여 학교와 마을과 지역 사이의 연대와 협동을 추구함으로써 아이들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마을교육 공동체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를 없애버리려하는 것은 무슨 자유인가? ‘내로남불’처럼 내가하면 자유고, 남이 하면 좌경인가?
아무리 헌법에 자유를 보장해도 민주사회에서는 자유에 관한 상식이 있다. 그것은 나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헌법 23조에서는 재산권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행사하라고 한다. 즉, 재산권조차 ‘함부로’ 행사할 자유는 없다는 얘기다.
내가 보기에 위 시민단체들이 이 건전한 조례를 없애려 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정치적’이다. 원래 진정한 ‘정치적 중립’은 전쟁이 나거나 날 가능성이 있을 때,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이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 이게 원래 ‘중립’이란 말의 배경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영세 중립국’을 선포한 것도 절대 남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것, 생명평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대립할 때, 어느 진영과도 동맹을 맺지 않는 것, 이런 것이 정치적 중립이다.
그러나 상기 보수 단체는 현 윤석열 정부처럼 한국이 미국-일본과 정치, 군사 동맹을 맺는 것을 적극 찬성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다른 시민단체나 마을교육공동체 등을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남을 향해 손가락질 할 때는 스스로가 깨끗해야 한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한 예수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보수’ 단체일수록 “환경 교육”을 더 잘하고 국토를 잘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게 보수적 가치에 맞다. 또, 남녀가 조화롭게 살면서 가정도 이루고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성교육’이나 ‘공동체 교육’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것은 “좌경” 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 가치에 걸맞은 교육이다. 생태계와 공동체를 잘 지키는 것이 원래 보수의 가치다. 그런데 위시민단체는 자유와 보수를 외치면서도 생태계와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는 목숨 걸고 반대한다.
이 정도면 자기모순을 넘어 자기부정 아닌가? 게다가 현재 경남 18개 시군에서 마을교육공동체가 운영되고 있고, 최근 충북도교육청에서는 ‘온마을배움터’란 이름으로 계속 지원하겠다는 조례 개정도 했다. 그런데 경남도에서는 이것을 없애려 한다니,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이런 맥락에서 부디 경남도의회나 도행정당국은 도교육청과 함께 건강한 마을교육공동체가 더 활성화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강화하길 강력 촉구한다. 그것이 역사와 사회에, 그리고 미래 세대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