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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카페 실험기

정수진

귀촌3년차.
국제개발 NGO 활동가이자
제로웨이스트 숙소 운영자
지난 9월 7일, 서울 강남대로에서 기후 정의를 외치는 행진이 열렸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나 혼자 플라스틱 컵 안 쓴다고 뭐가 바뀌겠어?'라고 의기소침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무더운 여름날 강남대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마음 한편이 든든해졌다. ‘혼자는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세상 곳곳에는 '뭐라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1년간 적량면에서 제로웨이스트 카페 '적량 다온'을 운영했다.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한 이곳에서 과연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카페가 가능할까?
카페 문을 열 준비를 하며 하나 다짐한 게 있다. '돈을 못 벌더라도 일회용품은 사용하지 말자!' 모든 포장 음료는 기부받은 다회용 컵(텀블러)에 담아주고 다 쓴 텀블러는 며칠이 걸려도 괜찮으니 반납을 받는다. 일회용 빨대 대신 스테인레스로 만든 빨대를 소독, 세척해 재사용하고 휴지와 소창으로 만든 냅킨을 나란히 비치해 손님들이 휴지 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해보았다. 음료를 제조하며 나오는 쓰레기는 분리수거하고 재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예를 들면 우유팩은 질 좋은 종이로 만들어지는데, 우유팩을 펼치고 씻고 말려 휴지를 만드는 재활용 업체에 보내면 '두루마리 휴지'가 되어 돌아온다. 이렇게 하면 재료가 담긴 비닐, 플라스틱 포장재를 제외하고 손님에게 제공하는 일회용품은 '휴지'가 전부가 된다. 운영 시스템은 이렇게 갖추더라도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의 반응’은 어떨지 꽤 긴장이 되었는데 지난 1년의 카페 일상으로 실험의 결과를 적어본다.
카페가 있는 건물은 적량면 문화복지센터. 목욕탕과 헬스장에 오는 손님이 드나드는 길에 개인 텀블러를 가져와 음료를 담아간다. 농번기에는 개인 텀블러와 용기에 음료와 팥빙수를 참으로 포장해가고, 개인 용기를 가져오지 않은 손님은 카페에서 대여하는 텀블러를 사용한다. 일회용 빨대와 휴지 대신 비치해둔 스테인레스 빨대와 소창 냅킨을 보며 "이런기 다 있노!"하며 반가워하고 외지에서 온 친구, 가족과 카페를 방문한 동네 어른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카페를 홍보하는 홍보대사가 되어준다. "여기는 일회용품 일~절 안 쓴데이. 이 빨대 봐바라. 포장해갈라면 컵을 들고 와야 돼~"
2023년 7월 문을 연 카페에서 지난 1년 3개월간 사용한 일회용 컵 0개, 일회용 빨대 0개. 일회용품 없는 카페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젊은 운영자의 제안을 믿고 받아들인 적량면 문화복지센터 어른들의 힘이 컸다. 아마 카페 운영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이웃들의 낯섦과 불편의 소리를 센터 어른들이 대신 들었을 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손님들이다.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카페의 취지를 이해하고 응원해준 손님들 덕분이다. 카페를 찾는 손님 대부분은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는 여행객이 아니라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은 카페를 찾는 하동 이웃들 그리고 공무원들이다. 그래서 시일이 걸려도 대여한 텀블러와 용기가 다시 카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카페 적량 다온’에서는 1회용 빨대 대신 스테인레스 빨대를 제공한다.
‘카페 적량 다온’에서는 개인용 텀블러를 가져오지 않는 손님을 위해 텀블러를 대여한다.
도시와 시골, 장소를 막론하고 일회용품이 넘쳐난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회사, 공공기관, 일상생활과 특별한 행사에도 '편리성' 혹은 '효율성'을 앞세워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다. '편리함'의 유혹이 크지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것 또한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고 카페를 하며 느꼈다. 편리. '편하고 이로움'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진정 우리에게 편하고 이로운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일회용품이 주는 편리함의 유혹을 가뿐하게 떨쳐낼 용기 있는 가게들이, 손님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