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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을 대하는 하동 시민의 자세

12.3 내란 사태가 일어난 지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하동 시민들은 이 혼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하동초등학교 100주년 기념탑 근처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최정임 씨, 12월 21일 ‘남태령 대첩’으로 불리게 된 트랙터 시위에 참가한 농민회장 정운채 씨, 수요일마다 하동읍 경찰서 회전교차로 인근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하동시민행동의 김민주 씨, 세 주민에게 물었다.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문구를 고민하며 매번 다른 내용의 피켓을 만들어 1인 시위를 했던 최정임 씨, 독립서점 ‘시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어른들이 미안해”……최정임

Q. 1인 시위를 하게 된 이유는요?
여기가 학교 밀집지역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한테 본인들의 생각을 이렇게 표출하고 알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생들이 자기 권리라든지 이런 걸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고차원적으로 막 나라를 너무 생각하고 그건 아니었고 학생들한테 그냥 좀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의미로 한 거예요.
Q.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둘째 날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싸움을 걸더라구요. “당신이 내란죄 일으키는 거 봤냐면서, 내란 아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 윤석열 대통령이 힘들다. 집구석에나 있지 왜 이렇게 나와 가지고 이런 거 들고 있냐.” 그러시더라구요. 그서 “아주머니도 윤석열 대통령 좋아한다고 적어서 여기 같이 서 있어요.” 그랬죠.^^
Q. 학생들이 뭔가를 느꼈을까요?
지나가는 아이들한테 “우리 어른들이 투표를 잘못해서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이렇게 사회가 어수선하고 불안한데 너네들한테 미안해.” 하니까 “괜찮아요. 힘내세요.”하면서 제가 들고 있는 피켓을 읽어주더라고요. 힘이 나더라구요. 초등학생들은 어렵대요. 탄핵이란 말도 모르고 내란이란 말도 모르고 그래서 몇몇 아이들한테는 설명을 해줬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헌법 용어라든지 이런 걸 교육에서 해 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봉준 투쟁단’의 깃발을 들고 트랙터를 따라 서울 상경투쟁에 참여했던 정운채 씨, 하동군 농민회 회장을 맡고 있다.

“같이 힘 모아서 민주주의를 하자는 얘기지”… 정운채

Q.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올라가게 된 이유는?
트랙터가 뭐하는 거예요? 논을 정리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정치를 그렇게 정리하자.’ 그런 거지.
우리 농민 입장에서는 농사 지어갖고 정주영이나 이병철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 먹고 살고 잉여 농산물 가지고 팔아서 내 아이들 공부시키고 내 만족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정부 정책은 대농을 위주로 해갖고 농민 규모를 줄이려고 해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때는 ‘식량안보’가 중요한 거거든.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 먹을 건 우리가 생산해야 돼. 근데 자꾸 우리 농민들은 폐쇄를 시키고 외국 농산물은 자유수입 무역을 해서 수입해 와 버리고 그런 정책으로 간다 이 말이야. 그래서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 위정자들 정치하는 거 갈아엎자 그러고 올라갔지.
Q. 남태령 대첩에서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을 때 어땠나요?
젊은 세대들이 농민들을 생각해주는구나 했지요. 우리 농민들한테 협조도 많이 해 주고 호응도 많이 해 주고 그러는 거 보면서 지금 세대들이 1차 산업도 버릴 수 없는 산업이라는 걸 아는구나 싶었어요.
Q. 그날,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30 여성들이 무방비 상태로 와 가지고 그날 저녁에 눈이 되게 오고 그러는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고. 그 사람들이 뭘 위해서 그랬겠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 농민을 도와주면서 같이 힘 모아서 민주주의를 하자는 얘기지.
민주주의의 의미와 시민의 역할에 대해 성찰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김민주 씨, 매주 수요일 5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경찰서 앞 회전교차로 부근에서 열리는 광장을 지키고 있다 .

“제대로 성찰하지 않으면 더 끔찍한 괴물이 등장할 것 같아”김민주

Q. 수요일마다 춧불 집회를 열고 계시던데?
1월 22일에 다섯 번째 촛불 집회를 했어요. 매주 수요일 저녁 5시 30분에서 6시 30분, 1시간 동안 하동읍 경찰서 앞 회전교차로 부근에서 하고 있습니다. ‘하동시민행동’이라는 모임에서 주최하고 있어요.
Q. ‘하동시민행동’을 소개해주세요.
12.3 내란 사태 날 밤을 지새우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껏 너무 사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발만 동동 구르던 차에 시민단체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지혜를 모아 달라고. 저는 이 사태가 단순히 한 사람의 미친 짓이라고 치부하고 분노하는 정도에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호해야 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리의 생활방식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인지 제대로 성찰하지 않으면 더 끔찍한 괴물이 등장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논의하고,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 몇 사람이 모였고,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논의를 키워가자며 첫 촛불 집회를 가졌죠.
Q.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언제까지 할 건가요?
촛불집회는 12.3 내란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를 기한으로 두고 있고,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시민들이 모이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진정한 민주주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인 생각, 자유로운 토론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 광장에서 살려내는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속,처벌, 탄핵 당연히 밟아나가야 할 형식적 절차라면, 깨어있는 시민 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영구히 남는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을 경험하게 하고 살려내기 위해 광장을 지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