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열렸다. 붐비지도 한적하지도 않은 애매한 로터리 앞에. 광장은 공원과는 달리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초기 그리스 시대에는 시민들이 아고라에 모여 자유롭게 토론을 했다고 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심히 중요한 문제까지. 민주주의의 씨앗은 여기에서 피어났다.
역사 속에서 광장은 상업 거래 공간으로, 유혈 사태가 벌어진 투쟁의 공간으로 변화해왔다. 대한민국의 광화문 광장도 ‘민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로 오늘도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런데 이 곳 하동, 인구 4만이 조금 넘는 시골에 열린 광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울 사는 친구 말마따나, ‘무슨 소용이 있나?’
12.3 내란 사태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12월 11일 하동 경찰서 앞 로타리에 모였다. 우리는 첫 집회때부터 지금까지 “탄핵하라!” “구속하라!”를 외치고 있다. 비록 국회 앞이 아니더라도, 이 목소리가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친다. 그런데 어느 날의 구호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들을 향해 꽂혔다.
성탈절이었다. 5시 30분이 되자 어김없이 몇몇 사람들이 로터리 앞에 모였고, 자연스레 초에 불을 붙였다. 노래를 듣다가, 구호를 외치다가, 옆 사람과 속닥속닥 얘기를 하다 보니 50분이 지났다. 마무리를 하려던 차에 사회를 보던 이가 “우리 돌아가면서 오늘의 소감을 말해봅시다.”라고 하며 마이크를 앞사람에게 넘겼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던 것도 잠시, 사람들은 모두 속얘기를 토해냈다. 답답함, 무력감, 분노…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마치며 팍팍한 심정과는 다른, 촉촉한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우린강하다!” “우린멋지다!” “따뜻해져라!” “밥좀잘먹자!” “내년에만나!” “담주에봐요!” 서로의 구호를 다함께 세 번씩 소리치면서 우린 정말 강하고, 멋지고, 따뜻하고, 건강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함박 웃음을 지으며 구호를 외친 건 처음이었다.
어떤 날은 한 분이 자원을 해서 기타 반주를 했다. 장갑을 껴도 손이 따가울 정도로 아주 추운 날이었는데, 그는 손이고 줄이고 뜯어져라 기타를 쳤다.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리~” 우리는 그의 열의에 화답하며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기타 반주와 투박한 노래는 멋진 방패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또 다른 날에는 광장에 아주 큰 솥냄비가 두 개나 등장했다. 촛불 집회에 오는 분들과 나누고자 늙은 호박 대여섯개를 내어 몇 시간 동안 푸~욱 끓여 죽으로 쑤어 왔다는 것이다. 미리 공지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을 챙겨왔고, 몰랐던 사람들을 위해 여분의 그릇도 챙겨온 이웃도 있었다. 그 날은 왠지 모르게 모두 기운이 떨어져 있던 차였는데, “조금 일찍 마치고 호박죽 먹을까요?” 하고 스무 명 남짓 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이런 구호로 그 날의 집회에 쉼표를 찍었다. 달큰한 호박죽을 꿀떡 삼키며 끝이 안 보이는 싸움에 지치지 않을 힘을 얻었다.
차들이 무심히 지나쳐가는 로터리 광장. 여기 서 있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비상식과 폭력이 봇물처럼 터지는 요즘, 나는 이 곳 광장에서 상식과 평화를 발견하곤 한다. 느려도 기다려주며 질서를 만들고, 보지 않아도 손을 보태고, 서로의 안녕을 살피고, 친구가 되어주고… 작은 평화를 만드는 실재하는 손들이 보인다. 지켜야 할 것이 바로 거기에 있어서 나는 다시 광장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