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생활한 지 30년 만에 시골로 돌아왔습니다. 도시에 살 때 시골로 가게 되면 닭 몇 마리를 키워서 달걀도 먹고 싶었고, 동화책에서처럼 병아리를 몰고 다니며 먹이를 찾아주는 어미닭의 부지런한 모습을 바라보는 상상을 했었습니다.

하동으로 귀농한 뒤 곧바로 닭장을 짓고 어린 토종닭 10마리를 입양했는데 소망을 이루기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마을과 떨어진 독립 가옥에서 기르는 닭은 야생 짐승의 좋은 먹이였습니다. 쪽제비, 삵, 담비, 너구리, 쥐, 뱀... 그리고 동네 개들까지 닭을 공격했습니다. 닭장을 몇 차례에 걸쳐 튼튼하게 고쳐짓고 외부에 다시 울타리를 한 번 더 설치하고 나서야 안정적으로 닭을 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 중 4시간은 자연방사를 하는데, 지금도 가끔 한 마리씩 사라지기는 합니다. 지금은 두 마리의 수탉과 여섯 마리의 암탉이 있습니다. 수탉은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종 교환을 하는데. 암탉은 그냥 키우다 보니 평균 나이가 너덧 살은 되었을 듯 합니다. 달걀은 몇 개 밖에 안 낳지만 닭을 잡기도 싫어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키우고 저 세상으로 떠나면 과수나무 밑에 고이 묻어 거름이 되게 해 줍니다.
올해 7월 말쯤. 사람으로 치면 70살 가량의 6년 된 늙은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것 같아 알둥지에서 쫒아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의 포란은 성공하기도 쉽지 않고 늙은 암탉의 건강도 염려됐기 때문입니다. 쫓아내고 다시 품기를 몇 차례 반복한 후, 이것도 운명이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두었더니 품고 있는 둥지에 다른 암탉이 알을 계속 낳아 둥지 전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편안한 포란이 되도록 도왔지요.
20일 이상의 인고의 포란 기간이 지나고 부화 예정일인 8월 20일. 아침 일찍 알을 품고 있는 닭장으로 가 상황을 보니, 늙은 어미닭이 둥지를 벗어나 병아리 여덟 마리를 데리고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둥지 안에는 부화되지 않은 달걀 10개가 남아있었습니다. 토종닭은 덩치가 작아 12개 이상은 품기 힘든데, 욕심도 많은지 18개를 안고 있었네요. 다음날 먹이와 물을 공급한 후 병아리를 보며 멍때리고 있는데 어미닭의 걸음걸이가 비틀비틀 이상합니다. 꼭 무릎관절 통증이 심한 할머니처럼 안타깝게 이동합니다. 다음 날 동틀 무렵 늙은 어미닭이 걱정되어 닭장으로 가보니 어미닭은 옆으로 쓰러져있는데 병아리는 모두 품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습니다. 그날 밤 다시 전등을 들고 닭장으로 가서 확인하니 어미닭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병아리 모두를 따뜻하게 안아 밤을 새우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병아리는 늙은 어미가 아픈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어미닭은 등을 바닥에 붙었고 다리는 하늘로 힘없이 향하고 있습니다. 곧 죽겠구나 싶어 어미닭을 들어내고 병아리들의 추위를 막아주려 전열등을 설치하는데, 어미닭은 땅에 등을 붙이고서도 병아리가 걱정되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렷하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병아리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어미닭의 간절한 심정으로 보여, 다시 어미닭을 병아리와 함께 있도록 했지만 이튿날 늙은 어미닭은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자본이라는 괴물이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시대. 늙은 어미닭의 짙은 모성애를 보면서 괜히 생각이 많아집니다. 고아가 된 병아리들을 잘키워 어미닭의 걱정을 덜어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