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장애인, 귀농인을 찾아 2025년 현재 하동군민들이 처한 경제적 상황을 들어보았다. 낮은 소득, 높은 부채, 부족한 복지망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하동의 모습을 확인하고, 내일의 하동을 고민해 보자.
여춘자(85세)... 독거노인, 병원 오고 갈 때 버스 타는 일이 제일 큰일
몇 해 전 남편을 여의고 혼자가 된 여춘자 씨는 8개월 전부터 우유팩을 모아 면사무소에 가져다주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 달에 10일을 채워 우유팩을 모아 받는 돈은 29만 원이다. 내년부터는 1만 원을 더 받게 될 것 같다고 한다. 노인일자리를 통해 얻는 수입 이외에 그는 30만 원 조금 넘는 노인연금과 14만 원 정도의 국민연금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여춘자 씨의 한 달 수입은 70만 원 남짓이다.
나이가 들며 몸이 여기저기 아파 병원을 다니는 일이 잦다. 그런데 버스를 타는 게 일이다. 시간에 맞춰 나갔는데도 버스가 지나가 버린 일이 있고부터는 1시간 또는 30분 정도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동네까지 오는 버스를 못 타면 악양에 와서 8000원을 주고 택시를 타야 한다. 굽어버린 허리를 펴지 못해 “작대기 짚고 이리 다니는 게 너무 부끄럽다.”는 여춘자 씨는 어제도 아픈 무릎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을 오고 가는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줄 방법은 없을까.
지길원(71세)... 지체장애인, 턱 높은 곳 많아 은행도 병원도 가기 힘들어
금남 노량이 고향인 지길원 씨는 2008년도에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중증 지체장애인이다. 휠체어와 목발 없이는 거동이 어렵다. 그는 진주에 있는 장애인 문화체육관에 주5일 운동을 하러 다닌다. 그곳에는 중증 운동실이 별도로 있고 전문 트레이너도 있다.
“하동에는 그런 시설이 없어요. 알프스 노인·장애인 복지관이랑 진교에 새로 생긴 남부노인복지관 다 가 봤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운동기구는 없어. 진주에 장애인 문화체육관이 있다는 것도 우리 애들이 인터넷 검색해서 알려준 거예요. 올 4월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의 하루는 매일 아침 6시에 휴대폰을 열어 장애인 콜택시 앱을 켜고 예약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콜택시 이용료는 왕복 1만 2천 원이고, 체육관 이용료는 월 2만 원이다. 체육관에 도착해서 운동을 하면서 돌아오는 콜택시 예약을 걸어놓는데, 어떤 날은 2시간도 기다리고 어떤 날은 콜택시가 빨리 연결돼서 운동을 하다가 도중에 부랴부랴 나오기도 한다. 콜택시 사정에 따라 운동 시간은 들쑥날쑥이지만 그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그는 그저 감사하다.
그의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될까? “나이 70인데 뭐 할 수도 없는 거고, 아내가 요양보호사로 나를 요양시키며 받는 거 하고 연금 조금 받는 거 그게 다에요. 넉넉하지는 않지만 남한테 손 안 벌리고 그러면 되죠.”라고 말하는 그에게 ‘2025년 기준 2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235만 원인데 그 정도는 되시나요?’라고 물으니 “그거보다는 낮아요. 그 통계가 얼토당토않은 것 같은데요?”라고 반문한다. 그에게 일상생활의 힘든 점을 물어보자 “하동 곳곳에 턱이 많아 은행을 갈 때도 병원을 갈 때도 힘들다.”며 “노인들이 다 어찌 보면 지체장애인들인데 시설에 그런 배려와 고민의 흔적이 없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K(60대)... 귀농 12년차, 농사의 특수성 감안한 부채상환 정책 필요
2014년에 귀농을 한 K씨는 대봉감과 양봉, 봄나물 등 직접 농사도 짓고 가공도 하며 지금은 연 3천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정도의 수입이면 2인 가족이 생활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부채다. 그는 귀농할 당시, 농식품부의 지원사업으로 귀농창업자금, 농촌주택개량사업, 후계농업인 육성사업을 신청해서 총 2억 5천만 원의 부채를 안게 되었다. 꼬박꼬박 이자를 내던 그에게 원금상환일이 도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귀농·귀촌을 하면 많은 정책 자금을 줍니다. 5년 거치 10년 상환 내지 3년 거치 17년 상환에 커봤자 2% 내지 1.5%의 이자에요. 이게 이자만 나갔을 때는 상관없어요. 5년차부터 원금 이자 상환이 동시에 들어가는데 1년차는 거의 만들어내요. 그런데 6년 차 들어갔을 때는 많은 이들이 포기하고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라며 입을 뗀 그는 성실하게 상환일을 지키며 지원금을 갚아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2년 반 전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 농사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상환일을 지키기 위해서 농사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예전 경력을 살려 여수로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농식품부는 농협에 사업을 이관하고 예산만 집행해 주지 운영하는 건 농협이 다 결정해서 하는 거라며 농협에 문의를 해 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10년짜리 대출을 일으켰다고 할게요. 그럼 10회차에 다 갚으면 되는데, 도중에 농사가 잘 안 돼서 한 해를 건너뛰고 11회차에 다 갚는다고 쳐요. 10회차에는 이자만 내고. 이런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도 필요한데, 지금 농협은 회차 안에 무조건 다 갚아야 된다며, 만약 못 갚으면 우리가 갖고 있는 담보 물건으로 경매를 하든 뭐든 해서 회수를 하겠다는 거예요. 이건 뭐냐면, 정책 자금을 받아가지고 귀농을 했던 사람들이 상환을 못 하게 되면 일반 대출로 전환시켜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현실로 만들어 놨다는 얘기예요.”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는 “국가에서 귀농귀촌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줬어요. 그걸 못 갚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긴 해요. 그러나 농사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뭔가 구호 대책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는게 문제라는 겁니다.”라며 재차 문제점을 강조했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수입으로 하동에서 사는 이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오늘 하동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내일 하동을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하동군민들이 처한 경제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