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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는 영혼의 목소리”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소사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는 90년대 초, 스무 살 중반 무렵이었다. 음악을 하던 친구에게서 받은 카세트테이프에 있던 노래가 소사의 ‘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하며)’와 ‘Todo Cambia (모든 것은 변해요)였다. 음질은 형편없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슴을 뜨겁게 하는 그 무엇이 분명 있었다.
소사는 1935년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62년 데뷔 후 민족정신을 품은 새로운 노래라는 뜻의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 운동을 대표하는 가수로 활동하게 된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후 미국과 유럽 강대국의 지원을 통해 군부독재가 등장하였다. 아르헨티나 최악의 독재자였던 비델라는 자국 기업을 외국에 매각시켜 개인의 부를 축적하면서 국가 경제를 파탄 내고, 이에 반대한 사람들을 고문, 학살하는 탄압 정치를 자행했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실종되거나 살해된 민중의 숫자만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소사의 ‘Todo Cambia’는 민중의 분노와 슬픔에 큰 위로가 되며 남미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결국은 정부로부터 금지곡이 된다. “피상적인 것도, 심오한 것도,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지요. 어제 변한 것들은 내일 또 변할 것이고,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은 변해 가지요. 그러나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Gracias a La Vida’는 칠레의 가수 비올레타 파라의 곡이지만, 소사의 목소리로 알려지고, 전 세계 좌파들의 송가로 널리 사랑받았다. 독재와 폭력에 저항하는 노래로 민중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소사는 결국 1979년 공연 중 체포되었다. 이후 세계 인권 단체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비판으로 소사는 석방되고,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는 가수이자 사회운동가인 해리 벨라폰테, 조안 바에즈, 밥 딜런 등과 교류하며 자유와 평화를 위한 콘서트 활동과 조국의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며 자신의 음악 영역을 확장했다.
1982년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으로 다시 돌아온 소사는 이후에도 계속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985년 비델라가 종신형을 선고받고 군부독재가 사라질 때까지. 소사는 2009년 눈을 감는 순간까지 40년간 평화를 위한 노래를 부르며, 모두 6차례나 라틴 그래미상을 수상한 유일한 가수가 된다.
이렇듯 국가와 시대 구분 없이, 소사의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녀가 가진 힘은 바로 크고 깊은 사랑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어루만지며 포용하는 목소리이며, 그 목소리로 침묵하는 대다수의 민중을 대변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