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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문해교육, ‘돌봄’을 넘나들고 ‘마을만들기’를 이룬다

평생학습 지원사업은 끝나도 어르신들의 수업은 끝나지 않아

화개 상덕마을회관 2층, 금요일 오후 시간이면 고령의 마을 어르신 열 분가량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글을 배우신다. 상덕마을에서는 하동군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늘배움 한글교실’ 수업이 진행 중이다. 80대부터 90대까지 고령의 어르신들이 열의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도 집으로 가지 않고 자리에 모여 앉아, 숙제를 하신다.
겹받침 자음을 활용하여 단어적기 숙제를 하던 할머니 두 분이 옥신각신하신다. “이게 맞다니까, 아니 이건 틀렸다니까!” 옆에서 색칠하기 숙제를 하던 한 할머니는 옆자리 할머니에게 지적하신다. “눈사람 색깔이 새파란 게 어디 있대, 허얘야지!”, “할매, 나는 퍼런 옷 입혔다 안하요!” 같은 그림에 저마다 다른 색을 채워 넣으며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 그렇게 어르신들은 서로를 돌보고 있었다.
(좌) 상덕마을회관 2층 문해교육 수업현장 , (우) 끝말잇기 숙제에 집중하고 있는 상덕마을 주민
본 기자가 교실로 찾아간 날은 12월 하순이었다. 현재 해당 지원사업이 종료되었음에도 수업이 진행 중인 이유를 물었다. 어르신들이 수업을 계속 듣고 싶다고 선생님에게 별도로 부탁을 하여 내년 1월까지 한글수업을 수업료 없이 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상덕마을에서는 올해 찾아가는 평생학습 사업으로 댄스교실도 진행되었다. 댄스교실의 경우 또한 어르신들의 쌈짓돈을 모아 적은 금액을 주기로 하고 자체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농번기에 수업을진행, 농한기에 사업이 종료! 운영 시기의 다양화가 필요해

상덕마을 문해교실에서 선생님으로 활동하는 이옥례 씨(66)에게 수업을 진행하며 아쉬운 지점에 대해 질문했다. “사업의 운영 시기가 정해져 있다 보니까, 농번기라도 수업을 해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올 수가 없어요. 고령이라도 농촌이니까, 어르신들이 일하느라 수업 들으러 오시기가 힘듭니다. 어르신들이 수업에 대한 만족감이 정말 높거든요. 배우고 싶던 것을 배우고 독거 어르신의 경우는 사람을 만나고 하니까 수업을 계속 듣고 싶어 하는데 1월, 2월에는 사업이 종료돼 수업이 없으니 늘 아쉽죠. 군에 피드백을 해봤는데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 수업을 더 하게 되었어요”
마을별로 수업 시기를 정하고 강사를 별도로 선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반대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된 교육사업인 만큼, 사업 시기 등 운영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를 이미 알고 있기에 조금 더 섬세하게 반영해 진행한다면 주민들의 만족도는 더욱 향상될 것이다.
최고령(91)인 윤복희 할머니
수업이 어떠했는지 사업이 끝나서 아쉽지는 않은지 학생들에게 질문했더니, 최고령 91세의 윤복희 어르신은 이렇게 답했다.
“댄스 수업을 안 하고 있으니까 몸이 찌뿌둥해서 안되겠뜨마. 우리들끼리 이야기해서 돈을 모아서 주기로 하고 부탁을 했제! 누가 찾아와서 이렇게 같이 하니까 얼매나 좋아. 한글 수업도 재미나. 쌍받침이나 어려운 건 몰랐는디 되새겨서 새로 배우니까 여엉 좋단께, 마음이!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수업을 일주일에 두 번 했으면 좋것어. 1월, 2월도 하고 말이여. 차 딸 때는 바빠서 공부 못허지만. 우리 한글 선생님이 떡 맹그러 가져다주지, 고추 가져가서 빻아다가 가져다주고, 들깨도 짜다가 가져다 주제. 얼마나 고마븐지 몰라. 한번은 고전 어디 가서 옷에 내 이름 글자도 붙이고, 가방도 만들고 구경도 다니고 했다니까. 마술쇼도 해주고”

문해교육 마을 돌봄(커뮤니티 케어)의 영역을 넘나들어

문해교육을 단순히 ‘교육사업’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만족감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복지사업’으로 확대해야 한다.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은 다양한 지역의 자원과 연계하여 주민을 찾아가는 체험수업, 공연 등을 어르신들에게 접하게 함으로써 지역사회가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87세의 이웃이 83세의 동생 식사를 챙기며, 모여 앉아 민화투를 치다가 수업을 듣는다. 91세 어르신이 경증치매에 걸린 다른 친구를 돌보고,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다그치지만, 실상은 서로를 돌보고 있다. 주민복지의 한 연계점으로서 문해교육이 작동할 수 있다.
문해교실에 대한 책걸상 지원사업 표지판

경상남도 주민참여 예산지원사업으로 책걸상을 지원받기도

마을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주민들의 마음에 닿았는지, 2022년도 주민참여 예산지원사업에 공모해 선정되기도 했다. 한 달 전 새 책상과 걸상이 마을회관 2층 경로당에 놓였다. 현재 상덕마을은 ‘마을만들기 지원사업’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주민참여예산사업, 문해교육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경험함으로써 주민들의 참여에 대한 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 이는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영역별로 분리된 칸막이 행정 내부의 협치, 행정과 주민의 협치가 요구되는 시기가 이미 와 있다. 진정한 협치는 주민의 다양한 요청에 응답하는 군 행정의 섬세한 변화에서 시작될 것이다.

2023년 1월 / 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