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웨이 하동’의 공영주차장 무단사용
이슈
사회


[독자마당] 어머니 저 잘 먹고 있어요... 먹는 걱정은 이제 그만!
독자기고
하동군민들의 이야기를 싣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평범한 하동 주민 열 명이 열두 달을 준비해왔습니다.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민박집을 하면서도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모였습니다. 참여자 대부분은 신문 만드는 일이 처음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가지씩 하동의 주요 현안을 깊이 있게 취재하며 실력을 쌓았습니다. 창간준비호를 달마다 4,000부를 발행하였습니다.
기획하고, 취재하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 하나하나가 놀라운 경험이었고 공부였습니다.
‘오!하동’도 제법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열두 번의 창간준비호를 발행하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쉬지 않고 발행할 힘도 커졌습니다.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언론협동조합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하동’ 창간호를 발행하며
공지사항
“그런데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
이런 숱한 질문에 적절히 대답하는 것이 ‘귀촌한 청년’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과제이다. 아무런 연고도, 담보된 직장도 없는 하동으로 온 이력이 독특했던 것인지, 아니면 삼십도 되지 않은 ‘얼라~’같은 청년이 드물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은 아닌 척하며 뜨거웠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서만 나고 자라서 돌아갈 곳이 촌(村)은 아닌지라 내게 ‘귀촌’이라는 말은 영 맞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가 ‘귀촌한 청년’이기를 바라는 것마냥 계속 내 앞에 그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아~ 나는 자연인이다, 뭐 그런 거 할라는기제? 그런데 와 화개나 악양 이런 데로 안가고?”
‘리틀 포레스트’와 ‘나는 자연인이다.’ 이 또한 나를 두고 자주 들려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욕구나 산골 생활의 로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삶터를 옮긴 이유를 굳이 말해야 한다면, 하늘을 가리는 빌딩 숲과 거리두기란 없는 빽빽한 지하철 그리고 도시의 무정함이 숨 막혀서랄까. 이런 이유를 순진하게 다 말해줘도 사람들은 “누구는 서울을 못 가서 난린데~!”하며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순간 나는 집 바로 앞에 이마트24, GS25, CU, 미니스톱이 다 있고, 집에는 와이파이도 잘 되고, 차로 조금만 나가면 좋은 카페도 수두룩하다는 말을 빠르게 늘어놓곤 한다. 그리고는 아차! 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너른 산과 반짝거리는 강을 끼고 살고 있으면서 온갖 도시적인 산물로 자랑해대는 내 모습이 모순덩어리 같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뒤져가며 집을 어렵사리 구했고, 곰팡이 가득한 시골집을 한 달 내내 고쳤다. 월세를 내야 하니 안정적인 수입은 필요해서 직장을 구했고, 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일처리 방식에 깜짝깜짝 놀라는 날을 보내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힘든 일이 겹쳐 서러운 날에는 ‘나 다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곤 한다. 그렇지만 잠시 밤 산책을 하다보면 그 마음이 가라앉는다.
푸른 논두렁을 지나 낮은 주택 골목길을 오가는 출근길. 마을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러 오는 담 없는 초등학교 운동장. 아침에 일어나 빨래를 널고, 햇볕 냄새나는 빨래를 개고, 집 안마당에 놀러 온 고양이와 새들에게 말을 거는 일상. 무엇보다도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시키는 일의 비중을 늘려가는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는 것이 만족스럽다. 좋은 학벌, 번듯한 직장, 서울의 집. 그 무엇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는데 말이다.

[청년] 귀촌한 청년, 저는 아닙니다만
독자기고
나는 하동에서 태어나 22년째 악양에서 살고 있다. 악양중학교를 나와 곡성 조리고로 갔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가 하고 싶었고, 하동에서 적당히 먹고 살아가는 소박한 요리사를 꿈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졸업 후 현장으로 갔고 대학도 안 갔다. 지금도 별로 대학 생각은 없다.
왜 어렸을 때부터 하동에서 살고 싶었을까? 그때의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안다. 하동은 편하다. 편의점, 배달, 많은 편의시설 등이 있어서 편하다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하다.
22살짜리가 이런 말을 하면 나이 드신 분들은 “너 같은 젊은 사람은 도시로 나가서 경험을 쌓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거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하고 흔히들 말하는 도시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보기도 했다. 코로나와 회사 사정으로 인해 오래 해보진 못했지만. 오히려 도시를 떠나 섬진강에 도착했을 때 활짝 펴있던 벚꽃을 보며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편함을 얻었다. 성공한 삶보다 정서적으로 편하고 여유로운 삶을 내가 더 추구하기에 하동에서 살고 싶다.
지금은 국방의 의무로 악양면 사무소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9시에 출근, 6시에 퇴근, 집에 도착하면 씻고, 밥 먹고, 친구들과 게임하다가, 잘 시간 되면 자고, 다시 아침에 눈 뜨고를 월~금 반복한다. 재미없다.

[청년] 앞으로도 웬만하면 하동에서 살고 싶다
독자기고


뒷산 나무는 동강나고, 끊어진 버스는 오지 않고...
우리마을두루두루


노량실버타운 요양보호사들, 노조활동 인정 못 받아
이슈
사회


고사리 농사 질만 하네
농사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일원이 한 역술인과 그 추종자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천공스승(이하 천공)’이라는 역술인과 그의 추종자들이 평사리 최참판댁 인
근의 토지와 건물들을 사들이면서 이곳이 유사종교집단의 본거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후보)의 멘토’라는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역술인 천공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윤석열 대통령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역술인
천공은 단순히 유명 역술인에 불과한 인물이 아니다. 2020년 8월 <뉴스타파>는 삼성 바이오로직스분식회계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2018년 11월에 범(汎)삼성가의 원로인 홍석현 회장과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단독으로 술자리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또한 2021년 3월 천공은 <최보식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의 멘토’임을 자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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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멘토’ 역할을 한다는 말이 맞나?

‘대통령의 멘토’ 논란을 불러일으킨 역술인이 악양까지…
이슈


천하명소 화개천에 방호벽이 웬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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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