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home
이슈/사회
home

[우리마을 두루두루] 횡천면에는 ‘작은도서관 몽당연필’이 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음식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횡천면은 6개 면과 접하는 하동의 중심에 있다. 교통이 사통팔달 뻗어 나가는 한가운데 횡천강이 흘러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여름엔 시원한 물놀이로 환영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림같이 유유히 흐르는 횡천강을 앞에 둔 횡천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도서관 몽당연필’이 있다. 중학교는 폐교가 됐고 초등학생 30여 명이 채 안 되는 횡천면에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그는 아마도 “나는 천국이 도서관처럼 생겼을 거라 상상했었다”라고 소설가 호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도서관이 천국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닐까?
관장 정주용(63) 씨

손수 마련한 도서관과 체험장

작은도서관 몽당연필의 관장 정주용(63) 씨는 횡천이 고향이다. 그는 남들과 같이 타향살이를 좀 하다 40대에 귀향하여 농사를 지었다. 농사짓는 일이 가장 편한 줄 알았는데 태풍 매미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하였다. 그는 이때 어떤 깨달음이랄까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듯하다. ‘어차피 인간은 결국 죽는데 60대에는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아보자’고 그는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 위해 도서관을 짓고 체험장도 마련했다.
도서관 안에는 벽면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책들이 꽂혀있고 방 중심에 책꽂이가 가로대 역할을 하고 있다. 피아노 두 대가 눈에 뜨이고 아직 펴 놓지 않은 탁구대도 눈에 들어온다. “책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인생의 모든 불행에서 자신을 지키는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라고 영국작가 섬머셋 모엄이 말했듯 이곳은 아이들의 아늑한 피난처처럼 보인다.

지역교육은 곧 미래를 위한 교육

정주용 관장은 작은도서관 몽당연필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작가와의 만남, 음악, 캘리그라피, 제빵, 목공, 영화보기 등 다양한 실내 활동을 하지만, 밭에서 노작체험(신체활동)을 가장 많이 한다. ‘천문대에서 별보기’ 같이 다른 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역교육이다. “지역교육은 곧 미래 교육이며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을 잘 알아야 소멸을 막을 수 있어요”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토지문학제와 이병주 문학관 견학을 통한 문학체험 외에도, 하동의 아름다움을 알려 주기 위해 섬진강과 하동포구 생태체험, 지리산 숲 체험과 쌍계사 ‘다도 체험’, ‘악양 조씨고택’ 방문 등 보존해야 하는 문화유산과 그 가치를 알려주는 데도 힘쓴다. 또 “일 년에 두 번 아이들이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 마을에 돌리는 봉사활동을 하고 여름 캠프에는 자치회를 만들어 스스로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즐겁지요”라고 말한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험 맛보기

정 관장은 “약 5년 동안 도서관을 운영하며 애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다 못 해주는 게 아쉽죠. 아이들이 체험을 통해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한 경험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요. 가령, 빵을 원칙대로 만들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험이 애들에게는 더 소중해요.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함께 놀며 공동체 의식을 키워가고 좋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아가지요”라고 말한다.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후원해 주시는 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제가 기업에서 후원을 조금 받고 있습니다”라고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을 설명한다. 관장의 사정이야 어떻든 이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은 훗날 “오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었다”고 빌 게이츠가 한 말을 똑같이 되풀이할 것 같다.

비어있는 도서관을 모든 주민이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모색 필요

하동군에는 하동읍에 한 개의 공공도서관과 한 개의 작은도서관이 있고, 9개 면에 10개의 작은도서관, 그리고 몇 개의 새마을 도서관이 있다. 모두 좋은 외관과 훌륭한 내부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운영이 잘되고 있는 곳은 극히 적다. 그 이유는 ‘횡천작은도서관 몽당연필’같이 관장이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책임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성이 중요한 도서관 업무와는 상관없는 기간제 직원이 일정 기간만 때우는 식으로 도서관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는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거나 적다는 것이다. 약 10년 전 우후죽순 격으로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지었지만, 이제는 그곳에 갈 아이들이 줄고 하동 인구 또한 줄었다. 관에서는 도서관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사람이나 예산이 없다고 말한다. 진교면 같은 곳은 도서관이 ‘청소년 문화의 집’ 안에 있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진교 작은도서관에서 유일하게 만난 이용객 김영순(75) 씨는 “책을 좋아해 자주 들른다”고 하는데 책이 그녀의 다정한 친구인 듯 했다.

“도서관! 그곳에 가고 싶다”

아이는 줄고 노인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텅 빈 도서관을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모색할 때인 것이다. 도서관은 침묵해야 하고 조용히 책만 봐야 한다는 선입견도 깨야 한다.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책이 있는 문화공간’에서 낭독회, 독서회, 시 필사 같은 동아리 모임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아동용 도서 위주인 도서관에 노인들이 볼 수 있는 큰 글자 책도 들여놓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잡지와 어른이 보는 그림책이나 만화책도 필요하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도서관!” 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면 좋겠다.

2023년 2월 /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