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밤 9시면 잠을 잔다. 하동 지리산 악양 골짜기에 들어와 살면서 시작된 버릇이다. 서쪽 산머리로 해가 꼴깍 넘어가면 산골짜기는 금방 어두워진다. 잠든 산에 기대어 나도 쌔근쌔근 아침을 기약하며 잠에 든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잔 사람이 우리 나라에 있기는 할까? 2024년 12월 3일 밤. 연신 부르르 떨어대는 전화기를 급기야 열었다. 카톡 방 한곳에 사연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눈을 부비며 읽다가 벌떡 일어났다.
뉴스에서는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의 모습과 국회 앞에 몰려든 시민들과 군인들이 맞서는 모습이 나왔다. 이어서 국회 담장을 넘어가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나왔고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건물의 유리창을 부수고 진입하는 무서운 장면이 중계됐다.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에서나 발포한다는 비상계엄이다. 가슴이 벌렁벌렁 떨렸다. 공포스런 그 순간에도 국회 앞에서 계엄군을 막으며 국회를 지키는 시민들을 보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당장이라도 국회 앞으로 달려가 온몸으로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막고 싶었다. 간절한 마음을 집중하여 계엄해제에 이르기까지의 국회 상황을 지켜보았다. 합법적으로 이 야만의 짓거리를 막아내지 않으면 발생할 일들은 너무도 뻔히 보였다. 공권력의 권위와 힘으로 무장한 독재자들이 저지른 폭압 때문에 겪은 고통과 아픔의 한은 아직도 다 풀리지 않았고 규명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또 그런 아수라장에 이 나라가 빨려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행히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가결시켰고 한시름 놓은 상태로 살고 있다. 그날 이후로 ‘도대체 이 나라가 어찌 되는 거지?’하며 매일 뉴스를 찾아본다. 아하! 학교 다닐 때 머리 아프다고 들여다보지도 않았던 헌법을 지금 공부하고 있다. 비상계엄은 해제됐고 대통령 탄핵으로 역사는 흘러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에는 대절 버스를 타고 서울 국회의사당에 다녀왔다. ‘하동시민행동’에서 마련한 버스였다. 국회가 있는 서울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자 수많은 시민들이 응원봉과 손팻말을 들고 도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칼바람 부는 거리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고 있다는 따뜻함과 연대의식을 느끼며 “윤석렬 탄핵!”을 외치고 돌아왔다. 그날 서울집회에 가서 많이 놀랐다. 아이돌 팬들이 사용한다는 응원봉도 실컷 봤고, 그런 노래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상’이라는 노래도 따라 불렀다. 게다가 ‘토요일 밤에’ 노래가 나왔을 때 앞줄에 앉은 20대 여성들이 신나게 노래를 하길래. “후렴구가 뭐예요?”하고 묻자 “토요일 밤에 석열이를 탄핵해!”라고 알려준다. 젊은 후배님들과 거리에서 한마음으로 외치고 하동으로 돌아온 그날 정말 대단한 뭐라도 한 것처럼 뿌듯했다.
하지만 하동과 서울이 어디 만만한 거리인가? 집회에 참여하려면 이곳의 일상을 자꾸 미뤄야 한다. 그래서 그날부터 나는 ‘하동이 서울이다.’라는 생각에 골몰했다. 그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시위가 그토록 깊은 울림과 광장에서의 해방감을 선물해 준 가장 큰 요인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청소년과 젊은 시민들에게 연대의식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깊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감정을 여기 하동에서도 느끼고 싶다. 이런 감정의 소통을 하려면 맛있는 밥 한끼 같이 먹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느닷없이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밥 먹자고 손 내미는 것도 뻘쭘한 일이니, 소통할 수 있는 문을 하나 내보자고 제안한다.
하동의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12월 3일 하동의 밤’이란 제목의 글 공모전을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른들은 공모전에 필요한 돈을 모으고, 하동 청소년들은 글을 쓰고. 그렇게 만나면 많이 기쁘고 벅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