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회 당산제를 지낸 청암면 사동마을 주민
333년을 이어온 청암면 사동마을 당산제
지난달 음력 정월 대보름(2월 12일) 청암면 사동마을에서는 당산할매 돌탑 아래 돼지머리에 돈봉투가 꽂혔다. 마을 당산제가 열린 것이다. 원래 아침 10시부터 거행될 예정이었으나 우천 관계로 2시에 열렸다. 이날 새로 부임한 청암면 면장 박영경 씨는 제관으로 참석해 주민들과 함께 당산에서 제를 올렸다. 박영경 면장은 “당산제 역사가 아주 오래됐더라고요. 우리 마을 (횡천면 마치 마을)도 제가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나무에 소지를 둘러놓고 황토를 길 따라 요만큼씩 부어놓고 그러더라고요. 어쨌든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니만큼 이런 기회에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전통으로 주욱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사동마을(절골) 당산제는 333회로 그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깊다. 사동마을은 3개로 나누어진 명사마을의 가장 위쪽에 위치해 있다. 소수의 대표 주민만이 제를 지내는 다른 곳과 달리 사동마을은 마을 주민 전체가 큰 잔치를 벌이며 당산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동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마을에 사는 이장 강갑정(74) 씨는 어렸을 적 어른들이 할배당산에서 제를 지내고 바로 내려와 할매당산에서 제를 지냈다고 기억을 전한다. 할배당산은 마을 끝자락에 있는 절 동산사 좌측에 있는 ‘천용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이고, 할매당산은 높이가 3.5 미터 둘레가 16미터 정도 되는 마을 입구에 있는 큰 돌무덤이다. 지금은 할매당산 앞에서만 제를 올린다.
강갑정 씨는 당산제에 참여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제주는 주로 부부가 맡는데 (고 허기순 씨 부부가 주로 맡았다),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좋은 생각만 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고 당일에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갔으면 다시 목욕한다. 제수용품 장을 볼 때는 사람들을 가능한 한 보지 않기 위해 삿갓을 쓰고 물건값도 깎지 않고 말을 아낀다. 특히 상갓집은 멀리한다. 집 앞 밑에는 금토(깨끗한 황토)를 뿌리고 위에는 금줄(새로 꼰 새끼줄)을 두른다. 제사상은 지금보다는 검소하게 차렸고 새로 지은 밥을 당산 아래 묻는다. 이날 제사에 사용한 밥그릇이나 국그릇, 수저는 다음 해에는 사용하지 않고 매년 새것을 이용한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전통이 느슨해졌지만 마을 주민들은 제삿날 하루 전, 당산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손수 금줄을 만든다. 금줄을 당산에 두르고 마을 주민의 일 년 소망을 적은 소지를 꼽는다. 일 년 동안 잘 닦아 보관한 제기와 돼지머리를 비롯한 시루떡과 과일 등 제사 음식 준비도 마친다. 명사마을은 사동, 점마을, 존티(상존과 하존)와 용심정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명사(明寺)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절이 많았던 곳이다. 1700년대 후반까지 존재했다고 알려진 청암사의 흔적이 ‘사미대’를 비롯해 희미하게 남아있다. 명사마을의 가장 끝인 사동마을은 특히 절골이라 불렸을 만큼 사찰로 유명했고 지금도 4개의 암자가 있다.
청암면 사동 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 할매
당산제는 주로 전라와 경상지방에서 행해지며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에게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지역공동체적 의례이다. 당산굿, 동제, 당제라고도 한다. 제일(祭日)은 주로 음력 정월대보름이나 마을마다 다르다. 하동군에는 사동 마을뿐 아니라 여러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는 다섯 개의 당산이있다. 적량면 우계리 첫 동네 공월마을은 수령 2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화개면의 의신 마을에도 당산제가 있다. 오래된 나무를 숭배하는 전통은 악양면의 ‘문암송대제’와 옥종면 ‘행나무 축제’ 등이 있다. 악양면 문암송은 커다란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는 소나무로 2008년 천연기념물 제491호로 지정되었다. 옥종면 청룡리 은행나무는 수령 약 600년으로 매년 10월 1일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역시 옥종면 두양리에는 1983년 경상남도 기념물 69호로 지정된 수령 900년의 은행나무가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세월 따라 제사의 애니미즘적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이웃과 함께했던 공동체적 전통은 그 명맥을 잃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소홀해지고 잊혀진 사람들이 제사를 통해 만나고 화해하고 정을 돈독히 나누는 데 제사의 기쁨과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겼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