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윤석열은 2024년 12월 3일 통치행위를 벗어난 불법적인 비상계엄 발포를 통해 내란을 일으켰다. 12월 14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안이 가결되어 윤석열의 대통령직은 정지되었다. 곧이어 윤석열과 내란 가담자들은 체포, 구속되었고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광장에선 시민들이 연일 모여 ‘윤석열 파면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반대편에선 윤석열 지지자들이 모여 ‘탄핵 반대’를 주장하고 있으며 급기야는 서부지법 폭동으로 사법부에 대한 침탈까지 감행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했고 그 양상은 내란에서 심리적 내전 수준으로 옮겨가고 있다.
윤석열의 계엄령 발포는 40여 년 전의 역사를 뒤돌아 보게 한다. 군부 쿠테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시민들의 민주항쟁에 굴복했고 결국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개헌 협상은 군부세력 민정당과 김영삼, 김대중이 이끌던 두 야당이 밀실에서 진행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 국회의원 소선구제, 지방자치제 등 형식적 민주주의를 골간으로 하는 제6공화국 헌정질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기층 민중이 배제된 개헌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거대 보수 양당의 정치 독점체제로 귀결되었다.
세계 경제 10위라는 겉모습과 다르게 세계최고 수준의 자살률, 저출산율, 산재 사망률은 무너져 가는 우리 삶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아래에서 들어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선 신자유주의 질서가 깊고도 폭넓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되고 구조화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선 부정과 무능이 난무했고 결국 대통령들은 구속되고 파면되었다.
2016년 촛불항쟁에 힘입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더불어 민주당은 국회의 다수당이 되었음에도 차별금지법은 상정조차 하지 않았고 노란봉투법 등 노동, 농민, 민생 개혁법안들은 처리하지 않은 채 소위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에만 매달렸다. 촛불항쟁에 나선 시민들의 실망감과 싸늘함은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국민의 힘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정치적으로 독선적이고 무능했던 윤석열은 대통령의 권력을 제왕적으로 휘둘렀다. 더불어 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 처리했어야 할 개혁법안들을 내세워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 윤석열은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민주주의 파괴와 유혈사태로 해결하기 위해 급기야 불법계엄을 발포했다. 87년 이후 증가하던 승자독
식에 의한 정치 불안정,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사회적 약자의 소외, 민주주의의 붕괴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다. 다행히도 광장에 모인 시민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 탄핵에 힘입어 12.3 내란사태는 진정되고 해결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이 없다면 미봉책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금 국민의 힘은 내란수괴 윤석열의 국회탄핵 소추안에 반대하고 구속된 윤석열을 알현하고 사법부를 침탈한 극우 지지자들을 옹호하는 등 수구, 극우의 길을 가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은 국민의 힘과 야합해서 반대하던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했다. 더구나 이재명 대표는 ‘주 52시간 근무시간 예외를 포함한 반도체특별법 처리’를 암시해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도 진보를 대변할 수 없음을 스스로 커밍아웃하고 있는 중이다
12.3 내란사태로 형성된 광장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윤석열 파면과 내란 가담자 처벌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치, 사회 개혁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나부끼는 깃발만큼 다양하다. 응원봉을 들고 나선 20~30대 청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은 민주주의의 진전과 차별받지 않는 삶을 외치고 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40여 년 동안 거대 보수 양당의 정치독점에 의해 자리 잡지 못하고 계속 왜소화된 진보적인 노동, 농민, 시민, 여성, 환경단체와 정당들이 자기 역할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후와 생태 위기, 불평등과 차별 해소뿐 아니라 다양성과 탈성장의 요구까지 담아낼 수 있는 ‘진보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시민은 “개헌과 정치개혁으로 권력의 분산과 다양성이 반영되는 정치구조, 지방 정부의 권한과 시민권이 강화되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개헌은 이해당사자인 정치권에 맡기지 말고 시민의회가 공론화와 숙의 과정을 거쳐 안을 마련한 후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위기의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복원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