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배고파요~~~!!!!!”
준경이가 오만상 떼를 쓰며 들어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짜증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저것은 정말 배가 고파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벌써 세 번째 학원까지 돌고 온 준경이는, 사랑이 고프다고 떼를 썼다. ‘오늘 수업은 글렀다.’ 생각하며 우선 준경이와 강희를 책상에 앉힌 뒤 시원한 음료수를 내왔다.
“쌤, 저 30점 맞았어요~ 키키키.”
강희는 눈치 없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희를 쳐다보니 가방에 구겨 넣은 시험지를 꺼내 코앞까지 들이민다.
“짜잔~ 근데 일등이에요. 이거 고등학교 2학년 수학이거든요. 쌤 인수분해 알아요?”
코를 후비적거리며 천진하게 말하는 어린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벙쪄버렸다. ‘나 때는’ 열 살이면 곱셈 나눗셈만 잘해도 칭찬받았는데, 인수분해라고? 해도 해도 너무 했다. ‘학원을 뺑뺑이 돌린다, 선행학습에 혈안이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실제로 이런 광경을 목격하니 너무나 폭력적이었다. 자라기 바쁜 아이들에게 돌덩이 같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게 하고, 돌덩이 같은 지식만 머리에 우겨넣고 있는 셈 아닌가. 아이들은 그 돌이 너무 무거워서, 나 살자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던지기 바쁘다.
“크크크, 근데 쟤는 20점 맞았어요. 저보다 못해요. 에~~~.”
“강희야. 이렇게 어려운 거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쌤은 인수분해 할 줄도 몰라~.”
이런 상황에서 지혜로운 어른이라면 어떤 답을 했을까. 나는 아직도 어리숙한 선생인지라 이 정도 답을 하며 어물쩡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쌤... 배고파요...”
가만히 앉아있다 돌을 맞은 준경이는 열이 오를 수밖에. 준경이는 책상에 철푸덕 엎드려 버렸다. 밤늦게까지 수학 공식을 외웠다는 강희도 하품을 쩍쩍 한다. 지금이 상황에서 책 펴자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얘들아, 오늘은 쌤이 책 읽어줄게. 이리 와 봐.”
벽에 기대 앉아 두 아이를 왼쪽, 오른쪽에 앉히고 글밥이 꽤 있는 그림책을 가져왔다. 한 장, 두 장, 넘기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준경이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으하암, 선생님. 할머니 집 온 것 같아요. 아~ 자고 싶다.”
“자고 싶다.”는 말이 썩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태양만큼 뜨겁게 뛰어놀아야 하고, 태양만큼 자비로운 품에 안겨 쉬어야 한다.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은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에서 무인도에 표류한 교사와 아이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교육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보다 넓은 세계와 연결되는 해방감을 맛보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실컷 뛰어놀며 외부 세계와 연결되고, 주체적으로 질문하며 내부 세계와 연결된다. 인간의 성장에는 경쟁도 선행학습도 필요하지 않다.
이 사건이 비단 준경이와 강희의 특수한 경우인 걸까? 서울에서 아이들을 만나던 때, 주말에도 학원 10개를 다닌다는 10살 어린이를 만난 적이 있는데 여기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전교생이 20명 남짓한 학교의 방과 후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도 숫자 경쟁이 일상이었다.
“쌤, 저는 중학생 영어 문법 들어갔지롱요~. 학원 선생님이 저 계속 이렇게 하면 연세대 갈 수 있대요~.”
“쌤, 저 플래너 샀어요. 00 고등학교 가려면 지금부터 인강 다섯 개 들어야 하거든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이나 하동이나, 더하면 더했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현장은 여전하다. 아무리 초등학교에서 시험 성적으로 경쟁을 시키지 않는다고 한들 어쩌나. 학교 밖의 더 넓은 세상에서 숫자로 서로를 겨누고 있는데, 아이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독서·논술 공부방을 그만두었다. 정리를 하며 어머니들 한 분 한 분을 만났다. 학원 하나를 더 다니기보다 엄마 무릎에서 그림책 한 권을 읽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에둘러 말씀드렸더니, 전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면서 뒤따라오는 말.
“나는 안 그러고 싶은데, 주변에서 다들 하니까....”
육아도 경쟁하는 시대라는데, 방향 잃은 어른들 따라다니느라 어린이들은 지쳐간다. 놀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하고... 알 수 없는 불안을 흡수하며 얼마나 조마조마할까. 그래서 나는 대놓고 ‘어린이 해방구’를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꾼다.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이라는 책에는 과할 정도로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 곳곳의 공간이 소개되어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데 쏟은 애정과 존중을 감지하고, 그로써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아름다운 것에 둘러싸여 있는 아이들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 데이브 에거스
산과 강이 안아주고 있는 이곳에 그런 공간이 생기면 어떨까? 학교가 끝나면 신나게 뛰쳐나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들어와서는, 벌러덩 누워 만화책도 보고 오늘 있었던 일도 조잘조잘 얘기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다가 직접 만들어 보고 간식도 요리해 보고 강 따라 산 따라 산책을 하고... 들꽃도 보고 곤충도 보고 할머니한테 인사도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내일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고...
그래도 하동에는 아직 고층 학원 빌딩들이 골목길을 뒤덮어 버리지는 않았고, 친구들과 쭈쭈바를 먹으며 쏘다니는 어린이도 드문드문 볼 수 있고, 산책길에서 뜬끔없이 “안녕하세요!”하고 꾸벅 인사하는 순수한 어린이들도 만날 수 있는 동네니까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런 점들이 돌파구라면 돌파구고, 희망이라면 희망이라들 말하니 말이다.
준경이, 강희, 소윤이, 지원이, 나연이, 시우가 실컷 꿈꿀 수 있는 꿈을 꾼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지난 우리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기에, 모호한 꿈을 올바른 이상으로, 올바른 이상을 명확한 현실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