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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광역쓰레기처리장, 이대로 좋은가

아침에 마을이장님이 마을 방송을 연거푸 한다. 잘 알아들을 수 없지만... “한 분도 빠짐없이 서명을...”이란 말에,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아침에 마을회관으로 갔다. 안 그래도 청년회에서 마을 방역(소독)을 한다고 격려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 봉투에 적은 돈이지만 넣고 갔다.
마을 사무소에 가니 연세 지긋하신 아지매 한 분과 이장님이 계셨다. “수고 많으십니다.”며 인사하고 청년회가 방역하신다고 수고하는데, 하며 봉투를 건넸다. 그러고선 아침에 방송한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다 했다. 이장님께서 서류를 주는데, 한 장은 취지문, 다른 건 서명부였다. 서명 취지문을 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광역 제2생활폐기물처리장이 유치되어... 주민지원금 분배위원회 회의를 4차에 걸쳐 진행해 왔으나 인근마을(덕오, 사등, 소송, 수문, 금오) 주민위원의 억지주장에 의한 계속되는 불참으로 회의 진행이 되지 않고... (심지어) 금남면 발전분배위원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차후에는 인근 지역 주민들 대표는 억지주장을 철회하고 지원금 배분 회의에 적극 참여, 원활하게 회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바라며, 만약 차후에도 같은 사유로 분배 논의가 진행되지 못할 시 우리 금남면민 전체 이름으로 단체행동을 불사하겠음. 이에 동의 서명합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이 일을 진행하는 주체도 없이 그냥 읽고 “동의 서명”하란 거였다. 나 역시 약 20년 전, 다른 마을 이장을 5년 했기에, 기본적으로 마을 이장님께 협조하려는 마음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서명하려 했으나 이 문건을 찬찬히 보니 서명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나는 ‘하동군 금남면 광역제2생활권쓰레기처리장’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도 없다. 최근에 남해군 쓰레기까지 하동군에 가져와 소각한다는 말에 ‘뭔가 잘못 됐다.’ 싶다. 진정 민주주의라면 나라 전체로 쓰레기 근절 정책과 더불어 마을/지역별 자체 처리가 옳다.
둘째, 위 취지문에 나오듯, 쓰레기소각장에선 “환경오염, 침출수 유출, 수질오염, 유해가스(다이옥신) 악취, 혐오시설로 인한 지가 하락 등” 온갖 문제가 많다. 소각장에서 나오는 침출수나 다이옥신은 발암물질이다. 오염된 물과 공기를 마시면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
셋째, 만일 금남-금성면 발전위원회나 행정당국이 진정 주민들 삶의 질을 생각하고 행복한 지역을 만들려 한다면, (남해군과) 하동군에 각기 110억씩 배정되었다는 “주민지원금”을 누가 얼마나 가질 것인지 갈등하기보다, 아예 쓰레기소각장 자체의 원천 재검토 요구를 해야 한다. 소각장으로 주어지는 돈은 없어도 살지만, 그 돈을 받은 뒤 가족과 이웃이 암에 걸린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또, 후손들은?
이런 면에서 나는 ‘금남면과 금성면 발전분배위원회’가 그 취지문에 나오듯 “환경오염, 침출수 유출, 수질오염, 유해가스(다이옥신) 악취, 혐오시설로 인한 지가 하락 등” 문제에 확실히 집중하기 바란다. 생명은 절대 돈과 바꿀 수 없다.
다음으로, 하동군과 군의회 역시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된 것이니 할 수 없다.’는 자세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주민 건강을 위해’ 그리고 ‘미래 후세대를 위해’ 물 좋고 공기 좋은 하동군을 만들어야 한다. 즉, 하동화력발전소, 광양제철소, 광역쓰레기소각장 등을 담보로 인근 주민들을 인질삼아 온갖 지원금을 받기보다는, 기존 정책들의 오류를 철저히 수정하고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등 ‘삶의 위기’ 요인들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즉, ‘경제와 생태의 조화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현재 금성면 갈사만 일대, 그리고 금남면과 고전면 일대, 나아가 하동군 전체에 걸쳐, ‘대기 오염 실태조사’와 ‘주민 건강 실태조사’를 매년실시,공기및수질오염으로인한건강피해(질환과 사망)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일례로, 갈사만 어르신들과 면담을 하면, 옆집이나 윗집에암으로돌아가시거나병상에계신분들이 허다하다. 심지어 인터뷰를 한 뒤 다음에 또 갔는데 안타깝게도 그새 암으로 돌아가시기도 한다.
요컨대, 건강과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모두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살지만,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떻게 먹고사는 게 정말 잘 사는 것인지, 깊이 자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