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문 앞에 떨어진 감꽃을 쓸다가 납작하게 말라붙은 주검을 하나 발견했다. 우리 집주변에 깃들여 살던 두꺼비였다. 어느 누군가의 차에 밟혀 비명횡사했을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감나무 아래 묻어주고 돌아오는데 불현듯 우리 악양의 상신마을과 노전마을 사이에 서 있는 당산목(堂山木) 십일천송(十一天松)이 떠올랐다. 작년인가 소나무 재선충으로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급기야 얼마 전에 11그루 중 한 그루가 베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던 참이다.
십일천송
십일천송은 “오래전부터 악양 노전마을의 지킴이로서 신이 깃들여 있다고 여겨, 신목이자 신주나무로 모셔”온 당산나무다. 수령 120년 정도로 추정되는, 모양과 크기가 다른 11그루의 소나무가 멀리서 보면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특이한 형상을 지녔다. 누군가가 일부러 조율이라도한 듯 거북 등껍질 같은 몸통을 뒤틀고 우산 모양으로 층층이 늘어서 있다. 조화와 상생의 가치를 온몸으로 구현한 영물(靈物)이 아닐 수 없다. 천상과 지상을 잇는 신목(神木)이자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자연과 사람을 한데 아우르는 지역공동체의 터주 역할을 하였으리라.
십일천송은 2011년에 하동군 보호수로 지정되었고, 2019년에는 “전국적으로 유사 사례가 없는 특이 나무로 보전가치가 높다.”고 하여 산림청에서 국가 산림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십일천송이 아프다니. 주변 숲으로부터도 상당히 떨어져 있고 사방이 탁트인 개활지에 있었는데도 재선충의 피해를 입은 게 의아했는데 오히려 이런 이유로 방심하고 대비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관리 주체가 바뀌고 나서(악양면->하동군청 산림녹지과) 이런 일이 생긴 게 못내 야속하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솔수염하늘소 등을 매개로 침입한 선충이 물관을 막아 소나무가 말라죽는 병이다. 치사율이 거의 100%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2007년과 2014년의 대유행을 거치며 지금까지 약 1500만 그루의 소나무가 피해를 입었다.
2005년에 소나무 재선충 방제특별법을 만들어 해마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들여 대규모 벌목이나 맹독성 농약의 살포와 같은 극단적인 물리·화학적 방제법을 쓰고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2023-4년의 확산세도 거침이 없어 3차 대유행까지 우려하고 있다. 한반도 소나무의 멸종까지 거론될 정도다. 소나무 재선충병의 피해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극심한 것은 지구 온난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온상승이 소나무의 식생에 영향을 미치고 매개충의 서식과 활동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기후변화에 따라 소나무와 같은 상록침엽수가 낙엽활엽수로 자연스레 바뀌는 과정이므로 굳이 인위적 방제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의 근거도 된다. 실제로 소나무가 죽는 원인 중 재선충으로 인한 건 일부라는 보고가 있다.
해충의 천적을 활용하는 등의 생물학적 방제법도 아니고 대규모 벌목과 맹독성 농약이라는 극단적 방제법이 오히려 피해를 확산시키고 자연스러운 생태복원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보다 20년 앞서 재선충 피해방제에 총력을 기울였는데도 결국 실패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실패의 교훈은 방제보다 자연 생태복원에 무게를 두고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인 산림관리정책을 새로 입안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십일천송과 같은 보존 가치가 있는 소나무 보호수나 숲을 방치하자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마구잡이로 멀쩡한 나무까지 죄다 베어내고 농약을 뿌려대는 것이나 이번 피해로 베어진 십일천송의 등걸 하나와 반도막으로 갈라진 안내표지판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인류의 오래된 스승이자 벗인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작가, 악양면 상신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