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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밀양

6월 8일, 하동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다시 타는 밀양희망버스’에 탑승했다.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 쇄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궂은 날씨에도 전국에서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밀양에 모였다. 그중에는 밀양 주민들과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민들은 그들을 ‘연대자’라고 불렀다. 나는 밀양이 처음이다. 나는 밀양이 처음이다.
행사는 지역별로 나눠 밀양과 청도에 세워진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둘러보고, 주민을 만나는 일정으로 시작됐다. 우리가 탄 버스의 사람들은 102번 송전탑이 있는 밀양 용회마을로 가기로 했다.좁은 강둑길을 따라 30~40분을 걸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100미터가 넘는 송전탑이 고요하며 한적하고 넓은 밭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송전탑을 처음 마주한 느낌은 신경을 거슬리는, 선명한 이질감이었다. “송전탑을 뽑아버리자!”라는 구호가 그날 집회에서 자주 들렸는데, 나는 그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밭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송전탑은 주위의 무엇과도 화합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것을 한참 올려다본 친구는, “디자인은 뭐 멋지네.”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당 혹스러움을 표현했다.
지역별 일정을 마친 참가자들은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를 함께하기 위해 밀양 영남루 근처 공원에 모였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희망과 우정을 이야기하는 노래와 춤, 그리고 참여자들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무대에 선 발언자 중에 특별히 밀양 용회마을 김옥희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밀양을 잊지 않고 전국에서 찾아와 준 ‘연대자들’에게 고맙다고 몇 번을 말했다. 칠 십 대 시골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연대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나는그녀의 모습이 참 멋있기도 했지만, 조금 서글펐다. 난생 처음 ‘연대’라는 말을 알게 되고, 또 거침없이 말하게 되면서 ‘밀양 할매’ 김옥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서울로, 도시로 실어 나르기 위해,밀양 골짜기 시골마을에 송전탑이 세워졌다. 그 과정에서 국가폭력은 농사지으며 서로 이웃해 사는, 작은 마을공동체를 무참히 파괴했다. 그 이야기들은 많은 자료가 증명하고, 그 자리를 지키며 굴욕을 함께 겪어낸 마을주민과 연대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생생히 전해졌다.
‘밀양 할매’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투덕거리며 화투 치던 친구를, 손볼 곳 천지인 촌집 수리를 군말 없이 해주던 시동생을, 하루 열두 번도 더 드나 들던 구멍가게 주인을 잃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기는 마음을, ‘밀양할매’ 김옥희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마음을 우리도 함께 나누며,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할매들의 새로운 ‘연대자들’이 되자.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투쟁 온라인기록관 : http://my765kvout.org/archive
청도 삼평리 송전탑 투쟁 사진집 예약구매 : 문의(서창호 청도대책위/ 010-8191-7744)
밀양 용회마을 송전탑으로 가는길. 논 한가운데 송전탑이 서 있다.
참가자들이 용회마을 102번 송전탑과 연결된 산 위 송전탑을 바라보고 있다.
마을 방문 행사를 마친 후 참가자들이 다음 행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기사 사진제공 : 김미진(울산 어린이책시민연대 후원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