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home
이슈/사회
home

주민 모르게 문화재 지정,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사별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월 3일 악양면 소다사복합문화관에서 열린 면정보고회에서 상신마을 주민들은 ‘7년 동안 몰랐다. 주민 몰래 문화재 지정’, ‘주민동의 없는 문화재 지정 원천무효’ 등이 쓰인 피켓을 들었다. 마을 대표인 배상춘 이장은 문화재 지정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주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 행정이 나서 줄 것을 요구했다.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자.
악양면 정동상신길 73-13에 위치한 조씨고가. 조선후기 상류층 전통가옥으로, 2019년 11월에 경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화사별서’로 불리고 있다. 지정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지 못하고 형식적 예고에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문화재 지정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드러났다.

문화재 지정도 몰랐는데 건축행위 등 제한규정에 대해 의견 달라고?

‘조씨고가’로 불렸던 ‘화사별서’는 1918년에 건립된 옛 가옥이다. 2019년 11월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제657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7년이 지난 2026년 1월 28일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월 22일, 마을 이장에게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기준(안)’에 대해 주민의견을 제출하라는 공지가 전달되었다. 이장에게서 공지를 전달받은 주민들은 “문화재는 뭐고 제한은 뭐냐?”며 설명회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하동군 문화체육과에서 주최하는 설명회가 열렸고 주민들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졌다.
2월 3일 악양면 소다사복합문화관 2층에서 열린 면정보고회에서 상신마을 주민들이 화사별서 문화재 지정과 관련하여 피켓 들고 항의하고 있다.
“어느 날부턴가 조씨고가 들어가는 입구에 ‘차량진입금지’ 표지판이 세워지고, 나무 벤다고 엔진톱만 돌려도 소음 민원이 들어왔다며 자제를 주문하고, 저온창고 지붕도 A자 모양으로 해야 한다고 하고, 그런 게 다 문화재로 지정돼서 그런 거였네.”, “왜 주민들 모르게 문화재 지정을 했냐?”, “우리도 모르게 한 일에 대해 건축행위 등 제한을 받는 것에 동의할 수 없으니, 제한구역은 조씨고가로 한정해 달라.”는 등 주민의 요구와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하동군 문화체육과 담당자와 연구용역 직원은 “문화재 지정을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제한구역 설정에 대해 각자가 가진 의견을 제출해 달라. ‘우리집은 이러이러하니 제외시켜 달라.’ 그런 걸 포함해서 의견주시면 최대한 반영하겠다.”라고 답했으나, 상신마을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주민들은 문화재 지정 당시, 주민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을 들어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문화재 지정 취소 및 재심의를 요구하는 청원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 문화재 지정 예고, 경상남도 홈페이지에만 공고돼

경상남도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 제16조 제5항에 따르면 “도지사는 해당 문화유산이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위원회의 심의 전에 그 내용을 경상남도 공보에 30일 이상 예고하여야” 한다. 또한 행정절차법 제22조 제3항에 따르면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할 때 당사자 등에게 의견제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화사별서’가 경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는 공고는 경상남도 홈페이지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6월 27일 지정예고 고시, 11월 14일 지정고시 2건이다. 그나마도 ‘하동 악양’, ‘화사별서’ 같은 단어가 없어, 해당 고시가 마을과 관련된 것이라고 주민이 판단하여 열람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홈페이지에 게시하였다고 하여 행정절차를 집행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했다고 볼 수 없다. 이해관계자가 불특정 다수라면 몰라도, 상신마을 주민으로 명확히 제한되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에게 직접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상신마을 주민들, 문화재 지정 취소 및 재심의 청원 접수

2월 3일 면정보고회에서 하승철 군수는 “주민들과 함께 싸우겠다. 만약 문화재 취소가 어려우면 제한구역을 화사별서에 한정시키겠다.”고 답해 주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에 힘입은 주민들은 2월 20일 경상남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하동 화사별서’ 지정 취소 및 재심의 청원>을 제출했다.
문화유산 지정은 해당 건축물의 보호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화유산 지정과 동시에 그 일대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되고, 건축행위 등에 규제를 받게 된다. 주민의 생활과 재산권 행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안을 두고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실질적으로 누락시켰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하동군은 군수의 약속대로 상신마을 주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의견수렴 절차를 형식적으로 그친 것에 대해서는 행정적 책임도 져야 한다. “주민이 있어야 문화재도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외치는 상신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