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 또 송전탑을? 주민들 반대 극심
주민들은 몰랐던 ‘입지선정위원회’, 행정과 한전의 투명한 의견수렴과정 필요
8월 31일 금남면 대치마을 회관 앞마당이 시끌벅적하다. 50여 명의 주민이 삼삼오오 모여 서명지를 돌리고 ‘절대 안 된다’는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국전력공사 남부건설본부(이하 한전)가 주최하는 15만 4천 볼트(이하 154kV) 고압 송전선·송전탑 건설사업 설명회가 있던 날의 풍경이다.
8월31일 대치마을회관에서 열린 송전탑건설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
최초의 주민주도형 입지선정 시범사업, 입지선정위원회가 송전선로경과지 직접 선정
송전탑 건설사업은 늘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피해당사자에게 개별보상을 해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소음, 전자파 문제, 인근 지역 땅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문제까지 주민들이 견뎌야 하는 고통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전은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민주도 송전선로 입지선정 시범사업’을 도입하였고, 이번이 첫 시행이다. 이에 따라 2018년부터 해당 사업을 안내하며 입지선정위원회 구성을 위한 절차를 진행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가 2020년 7월에 위원회 구성을 완료하여 지금까지 총 6차례 회의를 했다. 입지선정위원회에는 금남면장, 군청 경제전략과장, 금남면 발전협의회장, 대한노인회 금남면 분회장, 금남면 이장협의회 회장, 대치마을 이장, (구)노량마을 이장, 금호마을 이장, 대성마을 이장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송전선로 후보 경과지를 모색하고 현장답사를 하며 최종안을 만들었다.
안정적인 전력공급 위해 전력계통망 보강, 송전선로 복선화
이 사업의 정식명은 ‘154kV 남해-갈사(금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이다. 총사업비 97억 원, 총 연장 9.7km로, 금남지역에 154kV 철탑을 300m마다 하나씩 25개 정도 설치할 계획이다. 하동과 남해를 잇는 송전선로는 1985년경에 이미 설치되었다. 이때 대치마을에 7개의 철탑이 세워졌다. 문제는 이것이 단일선로라는 것이다. 한전 측은 태풍이나 돌풍 등으로 전력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대비하여 선로를 복선화하고, 대송산업단지에 신설될 변전소를 남해변전소와 연결하기 위해 해당 사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몰랐다.
그러나 대치마을 주민들은 설명회가 열리기 4일 전에야 송전선로 건설사업과 입지선정위원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주민들은 ‘도대체 입지선정위원이 누구누구요?’, ‘일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요. 처음부터 주민들 의견을 듣고, 그 다음에 선을 긋고 이래도 되냐고 물어봐야지!’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철탑이 들어선 땅을 소유하고 있는 주민 A씨는 ‘37년간 고통 받았다. 산사태도 나고 드론 방제도 못하고 내 땅에 아무것도 못한다. 내 땅 10만 평이 없어진 거다. 근데 옆에다 또 세운다고? 난 절대 찬성 못한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철탑으로부터 300m 부근에 사는 주민 B씨는 ‘새벽녘에는 철탑에서 ‘웅’하는 소리가 들린다. 복선화를 하게 되면 아랫마을에서도 그 소리를 듣고 살아야 될 것’ 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해저케이블 선로로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안이 불가능하다면 송전탑의 위치를 거주지에서 최대한 먼 쪽으로 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한전 측은 ‘검토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그저 보고만 있었던 하동군청
입지선정위원 중 1인이며 대치마을의 상황을 보고 받았을 하동군청 경제전략과 담당자에게 군의 역할을 물었다.
“솔직히 저희가 위원으로 들어가 있지만 거의 저희 역할은 없는 상태고요. 지금 아무것도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이고 고시·공고가 나간 상황도 아닌데 저희가 이걸 개입을 해서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낼 수 없는 상황이죠.”
2018년에 사업을 안내받고 입지선정위원으로 참여하며 최종후보지를 선정하기까지 하동군은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9월 19일 하승철 군수, 한전과 면담 가지며 주민의견수렴 당부
하승철 군수는 ‘본 사업으로 남해군은 이익이고 하동군은 피해만 보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과의 합의는 무척 중요한 사항’이라며 ‘향후 친환경적 개발에 악조건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사업을 다각적인 면에서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전, ‘달라진 것은 없다’며 절차대로 진행
주민 의견 수렴절차가 없었던 것에 대해, 한전은 ‘최종안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론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하며 지금 마을별로 진행하고 있는 설명회가 주민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라고 했다. 대치마을 주민과 군수의 당부를 어떻게 반영할지 물으니 ‘이쪽 마을 얘기듣고 이렇게 했는데 저쪽 마을에서 다른 얘기하면 상황이 안 맞다’며 의견수렴이 끝나고 난 뒤에 최종적으로 어떻게 할지 검토하고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최종안이 나오기 전에 의견 청취를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치마을 주민들과 최종안이 나와야 협의를 할 수 있다는 한전과 하동군 경제전략과. 이 평행선이 계속되면서 갈등이 증폭되면 ‘제2의 밀양사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최종안을 만든 후 통보식 설명회가 아니라, 처음부터 주민의 민심을 반영하기 위한 행정의 촘촘한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