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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어가지만 농민 마음은 타들어 간다

쌀값은 폭락, 농자재비는 폭등

들녘의 벼가 고개를 숙였다. 농민들은 벼 수확으로 여념이 없지만 마음은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무겁다. 모든 물가가 폭등하는데 오직 쌀값만 폭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년 대비 쌀값, 45년 만의 최대하락률 보여

통계청의 산지 쌀값 조사에 따르면 2022년 9월 5일 기준 20㎏ 쌀값은 4만 1185원으로 전년 같은 날 5만 4758원보다 24.8% 하락했다. 산지 쌀값 통계가 작성된 이후 45년 만의 최대 하락률이다.
산지 쌀값 하락은 쌀 도매가격 추이에서도 확인된다. ‘At KAMIS 농산물 유통정보’에서 1년 동안 월별쌀값 추이를 보면 하락이 아주 가파르다. 소매가격도 이 그래프와 비슷하다.
자료출처 : At KAMIS 농산물 유통정보
쌀값이 이렇게 떨어지면 농민들은 어찌 되는가? 들녘의 저 많은 벼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먼저 2022년 정부 공공비축미 수매량과 수매가부터 알아보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월 31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2022년산 공공비축 쌀 45만 톤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45만 톤 중 10만 톤을 산물벼(수확 후 건조하지 않은 벼) 형태로 매입하고, 포대벼(수확 후 건조· 포장한 벼) 형태로 35만 톤을 매입할 계획이다. 산지 쌀 값 하락을 반영하여 예년보다 매입물량을 10만 톤 늘리고, 매입 시기도 보름 이상 앞당겨 가격 안정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비축미의 매입가격은 예년보다 크게 낮을 것으로 보인다.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은 통계청에서 10월 5일부터 12월 25일까지 10일 간격으로 총 9회 조사한 산지 쌀값의 평균가로 결정한다. 그런데 9월 현재에도 산지 쌀값 하락 추이가 멈추지 않고 있어서 농민들의 걱정이 깊어지는 것이다.
공공비축미는 전체 쌀 생산량 10%(통계청 자료. 2021년 생산량은 388만 톤) 내외다. 그렇다면 나머지 90% 쌀은 민간 시장에서 유통된다. 민간 시장 유통의 시작은 미곡종합처리장(RPC)이다. 벼의 수집, 건조, 저장, 가공, 포장, 판매를 일괄 처리하는 시설이다. 이 처리장은 농협이 공동출자하여 만들거나 민간업자가 만든 시설들이다. 하동군은 읍·면 농협의 연합시설로 금남면에 ‘금남농협연합미곡종합처리장’이 있다. 전국 곳곳에 있는 처리장에서 쌀 생산량의 50%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공공비축미와 미곡처리장에서 유통되는 것 외에는 개인의 판매로 소화한다. 그러므로 쌀값 결정과 유통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각 지역의 미곡종합처리장인 셈이다.
벼 수확시기를 살피는 농부

정부의 쌀 ‘시장격리’ 실패 하동군 햅쌀 30% 폭락 예상

2022년 햅쌀값은 어떻게 될까? 하동 쌀값은 어떨까? 쌀값 결정은 각 지역의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수매하는 가격에 달렸다. 전국농민회 부산경남연맹 부의장이고 옥종면에서 농사를 짓는 장호봉 씨(남, 52세)는 “작년에 비해 쌀값이 30% 정도 폭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2021년 하동 미곡처리장 수매 가격은 나락 40키로에 62,000원이었는데, 올해는 의령과 함안에서 45,000원으로 결정했다. 하동도 비슷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30%의 폭락.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은 2021년산 재고 물량을 조절하는 정부의 ‘시장격리’ 실패이다. 양곡관리법에 따르면 시장격리는 정부가 쌀값이 떨어지면 쌀을 사들이고, 오르면 시장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쌀값이 오를 때 공급하는 것은 의무인 반면, 쌀값 하락 때 사들이는 것은 정부의 판단에 따르게 돼 있다. 농민회를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쌀값 하락할 때도 ‘의무’으로 사들이는 시장격리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정부는 2월 14일, 6월 13일, 7월 20일 3차례에 걸쳐 시장격리 조치를 했지만 과잉공급된 물량을 제때 격리하는 데 실패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봄에 격리조치를 제대로 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격리조치가 늦어지고 물량도 나눠서 하는 바람에 재고 쌀이 시장에 풀리자 가격은 강한 하락세를 형성했다. 게다가 격리 조치할 때 적정 가격으로 사들인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써 낸 가격에서 최저가격순으로 매입하는 ‘역공매방식’으로 진행하여 쌀값 하락을 부추겼다. 정부가 재고물량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저율관세물량(TRQ)으로 수입되는 쌀이 41만 톤이다. 쌀 생산량의 10% 정도이고 공공비축미에 버금가는 양이다. 쌀 자급률이 90% 이상인 상황에서 수입쌀의 존재는 과잉공급을 불러오고 공공비축미의 효과를 없애버리는 셈이다.

햅쌀 수매 전에 2021년 재고쌀 시장격리부터 단행해야

지금 당장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를 시행해야 농민들이 살 수 있다. 그 대책은 무엇일까? 장호봉 부의장은 “무엇보다 햅쌀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2021년산 쌀을 시장격리 해야 한다. 이게 가장 시급하다. 또, 쌀이 목표가격에 도달하지 못하면 80%를 보상해주던 변동직불금 같은 제도가 복원돼야 하고, 미곡종합처리장에서 나락 수매할 때 쓰는 자금을 무이자로 쓰게 하여 그 이자만큼이라도 가격을 올려야 한다. 쌀수입 중단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경남미곡종합처리장조합과 쌀값 협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쌀값 폭락을 걱정하는 것은 농민만이 아니다. 9월 15일 8개 도지사들이 정부에 ‘쌀값 안정대책 마련 촉구’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공공비축미의 확대와 2021년산 쌀의 시장격리를 비롯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9월 29일 농민투쟁선포대회를 가진 농민회
고물가시대, 모든 것이 오르는 시기에 쌀값 폭락은 방치하고 있다. 정부의 미흡한 대책은 고물가의 고통을 농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쌀값이 무너지면 농사가 무너지고, 모두가 고통스러워질 것이기에 결국 우리 문제다. 정부의 쌀 값 정상화 대책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2022년 10월 / 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