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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쓰려면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기사를 작성하려고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다. 이 전기는 발전소에서 생산되어 송전선로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전기사용의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자리잡고 있다.
발전소 주변 주민들은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공해 물질로 각종 병을 앓고 있다. 땅값이 떨어지는 재산상 손실도 막대하다. 송전탑 주변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송전선로의 유지를 위해 재산권 침해는 기본이고,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전자파는 문제 삼을 수조차 없다. 집 앞에 거대한 굴뚝과 발전소, 송전탑이 보이고, 대형 트럭의 매연과 발전소와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소음이 24시간 계속된다. 하동에 있는 화력발전소와 송전선로는 주변 지역의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전기가 사용자까지 가는 과정에는 어떤 일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살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고 싶은 명덕마을 사람들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에는 1997년 가동을 시작한 하동화력발전소가 있다. 매년 1000만 톤 이상의 석탄과 300만 리터 이상의 경유를 태우는 발전소 굴뚝에서 불과 418m 떨어진 곳에 명덕마을이 있다.
명덕마을 주민을 만났다. “살다 살다 도저히 못 살겠어요. 그래서 이주하려고 소송을 하고 있고, 10월 6일 판사님이 현장에 오기로 했어요” 마을주민들은 살기 위해서 정든 고향을 떠나게 해달라고 말한다.

형식만 갖춘 주민참여형 송전선로 입지선정위원회

하동군에는 1곳의 변전소와 약 75㎞의 송전선로가 있다. 송전선로는 고전면, 양보면, 금남면 등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송전선로가 없는 지역의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반대를 지역 이기주의로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송전선로를 추가로 놓으려면 이미 송전탑이 있는 곳에 놓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금남변전소와 남해변전소를 잇는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송전선로가 들어설 곳을 결정하는 입지선정위원회는 지난 7월 28일 최적 후보경과지를 선정하였다. 최적 후보경과지는 기존의 송전선로 바로 옆이다. 8월 31일 금남면 대치마을에서 열린 주민설명회를 찾아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사업이 시작된 2020년 8월부터 2022년 8월까지 무려 2년 동안 대치마을 주민들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주민주도의 입지선정위원회라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국가 기간시설이라는 명분으로 강행하는 송전선로 사업

대치마을을 지나는 송전선로가 처음으로 계획된 것은 2013년 8월 작성된 ‘제6차 장기송전선로계획’이다. 장기송전선로계획에 사업이 반영되면 주요 지역의 면장, 부면장, 지역주민, 이장단, 하동군수, 하동군의회를 상대로 입지선정운영회 구성 안내를 실시한다. 이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입지선정위원회를 최종 구성한다. 입지선정위원회는 최적 후보경과지를 선정하게 되는데, 이후 측량 및 주민설명회가 이어진다. 주민설명회를 마치면 산업통상자원부에 ‘전원개발실시계획’을 신청하게 된다. 이것은 사업의 세부 시행계획 및 관련 인허가 협의가 완료되고 토지수용권을 확보하였을 때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사업 승인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동군과 하동군의회는 주민 의사 수렴이나 주민동의를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1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최근 하승철 하동군수는 한국전력과의 면담에서 “기술적인 측면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사회‧자연조건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며, 지역 주민들과의 협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 군수의 말대로 실제 ‘주민과의 협의를 가장 중요’시하는 하동군 행정이 이루어질지 주목해야 할 때이다.

2022년 10월 / 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