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급식’을 넘어 ‘마을공동밥상’으로
마을주민들이 준비하고,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마을공동밥상 전면적인 시행 희망
낮 12시. 점심시간. ‘농번기 마을공동급식’을 하고있는 청암면 상이리 심답마을 마을회관이 떠들썩하다. 마을회관 안에는 점심상이 차려져 있고, 오전 일을 끝낸 농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마을회관이 가득하다. 점심상에 둘러앉아 농사 이야기, 건강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공동급식을 하는 동안 마을이 한층 활기차졌다.
마을공동급식은 농사철 일손 부족 해결에 도움을 주고, 여성농업인의 집안일을 덜어주기 위해 2012년부터 군에서 지원하고 있는 사업이다. 올해는 24개 마을에 225만 원씩 지원하여 20~25일 정도 공동급식을 한다.
심답마을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지원받아 4월 10일부터 5월 중순까지 진행한다. 마을이장 양우석(남, 63) 씨는 “그동안은 동네 어르신들께 마을부녀회에서 점심을 해드리긴 했어도 많이는 못 했어요. 군에서 지원을 해주니 큰 도움이 되지요. 우리마을로 귀농 귀촌한 젊은 사람들이 점심준비를 함께 해주니 더 좋고요. 밥걱정도 없고, 이야기도 하고, 참 좋아요”라며 크게 반겼다.
마을공동급식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 심답마을 주민들
마을주민들이 준비하고,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마을공동밥상 전면적인 시행 희망
마을공동급식이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공동급식 기간이 너무 짧다. 하동군에서는 급식 기간을 25일 이내로 하고 있다. 마을공동급식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농축산과 강용우 주무관은 “농번기와 급식 인원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하되 20일 이상 실시하고, 연간 2회 분할 운영도 가능하다”고 했다. 225만 원으로 지원금이 한정돼 있다보니 기간을 늘리기도 어렵다. 주민들은 공동급식이라는 ‘점심시간 잔치’가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둘째, 공동급식 마을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꾸준하다. 이 사업은 2012년 13개 마을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2020년 32개, 2021년 24개, 2022년 15개, 2023년 24개 마을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금은 경남도비 30%, 하동군비 70%로 구성하여 해마다 조금씩 늘리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을 신청하는 마을은 지원하는 마을의 두 배에 가깝다. 2023년도 24개 마을 지원사업에는 42개 마을이 신청하였고, 군에서는 읍면별 최소 1개소 이상 최대 3개소 이하로 배정하였다. 선정기준에 대해 담당 주무관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원하지 않은 마을을 우선 선정하고, 그동안 지원 횟수가 낮은 마을을 그 다음으로 선정하였다. 지원 횟수가 같은 마을 중에서는 공동급식을 신청한 인원이 많은 마을을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올해 지원받는 마을은 하동읍(신기·궁항·먹점마을), 화개면(법하마을), 악양면(하덕·노전·하중대마을), 적량면(동촌마을), 횡천면(마치·원곡·횡계마을), 고전면(주성마을), 금남면(영천마을), 금성면(신평·용포마을), 진교면(신촌·하평·이곡마을), 양보면(운산·구청·지내마을), 북천면(금촌마을), 청암면(심답마을), 옥종면(북방마을)이다.
셋째, 공동급식 인원이 20명 이상이어야 사업신청이 가능하다는 자격 기준도 아쉽다. 마을이 쇠락하여 주민 수가 작은 마을은 신청조차 하지 못한다.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농촌 인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기준이다. 이 점에 대해서 강용우 주무관은 “몇 개 마을이 묶어서 20명 이상 급식이 가능한 경우도 지원하도록 홍보하여 작은 마을도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넷째, ‘공동급식’이 아니라 ‘공동밥상’ 지원사업이면 좋겠다. ‘급식’은 누가 누구에게 밥을 주는 것을 뜻하는 만큼 위계가 생기기 쉽고, 한정된 기간과 한정된 대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밥상’은 함께 만드는 개념이다. 지금도 마을마다 동네 어르신들끼리 모여 점심을 해 먹거나 마을 부녀회에서 해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더 확대하여 ‘마을밥상’이 된다면 마을의 일상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차리는 밥상에 지자체에 일정한 금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마을 공동체를 살찌우는 으뜸 방안이 될 것이다.
악양면 하중대마을 이장 조정수(남, 48) 씨는 공동급식이 대폭 확대되기를 바랐다. “2년전 코로나 때 지원을 받은 적이 있어요. 방역지침에 따라 모일 수 있을 때 모여서 같이 밥을 해 먹었어요. 너무 좋았어요. 우리 마을은 실제 거주 인원이 35명 정도인 작은 마을인데, 절반 정도가 모였으니 좋았죠. 부녀회장님이 고생이 많았고요. 올해 두 번째로 지원받는데, 다른 마을도 다 공동급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마을에서 음식준비가 힘들면 면사무소 부근에 공동취사장을 만들어 음식을 준비하여 마을마다 가져가 먹는 것도 한 방법이겠고요”
마을공동급식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 심답마을 주민들
10억 원이면 하동군 모든 마을에 300만 원씩 마을공동밥상 지원 가능
일손 부족과 인구 감소, 고령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마을의 활력도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마을공동급식’은 농번기 일손을 보태는 효과가 있고, 마을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주
어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은 사업이다. 그렇다면 더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마을공동급식을 넘어서 주민들이 스스로 같이 해먹는 ‘마을공동밥상’을 지원할 때다. 하동군은 318개 마을이 있는데 마을마다 300만 원씩 지원해도 9억 5400만 원이다. 하동 예산 규모에 비하면 크지 않은 돈이다. 이 돈을 밥상준비에 자율적으로 사용하면 점심시간이 마을잔치가 되고, 살맛 나는 하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