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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평범한 아침

어찌 보면 세상만사 모든 ‘일’이나 ‘사건’은 우연히 일어나고 우연하게 흘러간다. 나는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나 무수한 ‘우연’들을 접하며 살다가 우연히 ‘밥집’을 ‘업’으로 삼게 되었고... 대략 여섯 군데 가량 자리를 옮겨가며 25년 정도 밥집을 해 오고 있다. 꽤 긴 시간 동안 한 업종을 이어 왔던 것이나 자리 옮김 역시 내 의지나 판단은 깊게 관여된 기억이 거의 없고 우연과 우연에 의한 사건이 이끌고 다닌 것이라 판단된다.
밥집을 직업적으로 풀이를 해 보면 ‘밥을 팔아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인데 나로서는 이 부분이 오래도록 명쾌한 이해로 닿지 않는다. 밥을 팔아 밥벌이를 하다니. 밥을 팔아 밥벌이를 하지 말고, 팔아야 할 밥을 그냥 내 밥으로 삼아 먹으면 밥벌이를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닌가 싶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일 어느 하나라도 내 바람이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없는 것이고 보면 이해가 닿지 않는 일도 그러려니 하며 가려운 곳을 임시방편으로 긁어 주듯 긁적긁적 살아 낼 밖에.
최근에 4년 정도 운영한 밥집을 접고 새로운 밥집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겨울까지 운영했던 밥집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20년이 넘는 경험치가 있으니 이제는 경험치를 활용해 나름 수월한 밥벌이를 해낼 수 있겠다 싶었고 더는 우연에 맡기지 않고 자신감으로 해낼 수 있겠지 싶은 심정으로 시작한, 당찬 각오가 가득한 출발이었는데, 그 이듬해 코로나라는 어마어마한 악재가 있었고 또 그 이듬해에는 밥집의 천장 부근까지 물이 차 들어차는 수재민이 되기도 했었고... 한 마디로 안 풀려도 이렇게까지 안 풀리나 싶은 경계까지 내몰렸던 것이다.
누더기 마냥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내려, 가게를 접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밥집 준비를 시작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올해(2023년) 1월쯤 문을 열었을 것이지만 계획은 여지없이 내 생각과 달리 흘러갔고 여차저차 시간이 흘러 3월이 돼서야 겨우 문을 열게 되었다.
불쑥 봄이었다.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방편에 매달려 지쳐 있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불쑥 봄이 들어 서 있었다. 새로운 개업을 하고 보면 한동안은 정신이 없다. 늘상 하던 일인 양 싶어도 장소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손에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눈에도 익혀야 하고 주방 집기들도 익혀야 하고 새로운 동선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불쑥 들어선 ‘봄’도 예전 같지 않게 낯설었던 것이다.
그런 어설프고 낯선 나날의 어느 시간, 다소 낯선 용건의 전화 한 통이 날아들었다. 어느 지면에 글을 실어 줄 수 있는지...하는 내용이었다. 통화의 용건을 파악하는 순간 ‘이건 아냐!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원고를 쓴다는 건 접바둑으로 비유하자면 아홉 점을 깔아도 무리한 일이었다. 불가능한 제안이니 거절을 하라는 오른쪽 이의 생각과 왼쪽이의 생각은 달랐다.
- 말이 안 되긴, 뭐가 말이 안돼? 봄이잖아. 불쑥. 그건 말이 돼? 그런 거야. 봄이, 그냥 봄이지, 말이 되는 봄이 있고 말이 안 되는 봄이 어디 있어? 선택지는 언제나 단순해. 긍정, 부정 둘 중에 하나야. 사건이나 본질은 언제나 원형 그대로고 형태나 모양이 바뀌는 건 긍정, 부정 그 선택에 따르는 것일 뿐이야. 봄이잖아, 좋은 제안이 들어왔잖아. 좋은 일이고 반가운 사건인 거야. -
나는 왼쪽이의 생각에 조금 더 공감이 갔다. 세상의 모든 우연에는 약간의 결함이 있다. 아니, 애초 세상에는 완벽한 모양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장점에는 약간의 단점이 있고, 모든 단점 역시 약간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양이나 질감을 결정하는 건 결국 스스로의 선택일 뿐이다. 긍정이냐, 부정이냐. 나는 결국 불쑥 들어 온 봄을 긍정하기로 했다. 나는 좋은 제안을 긍정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우연한 사건을 좋은 모양, 좋은 질감으로 매듭하고자 한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조그만 나뭇가지에 달린 이슬 방울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파도가 나의 아침에 상쾌한 바람을 보낸다. 어제와 달리 나의 오늘은 평범하게 빛나는 평범한 아침이다.

김정윤

화개면 주민

2023년 5월 / 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