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악양면 상신마을에 갤러리가 들어섰다. ‘갤러리’는 다른 많은 외래어처럼 거의 우리말같이 쓰이고 있지만 우리말 ‘화랑’을 대신하고 있는 단어다. 조씨 고택 ‘화사별서’ 가 있는 상신마을에 도시적 느낌을 주는 ‘갤러리’는 그 단어부터 생경하다. 세월은 인간의 언어와 공간을 바꾸어 놓는다.
외양간이 변신한 갤러리 빈산의 외부 모습
갤러리 ‘빈산’ 관장 장윤희 씨는 처음부터 갤러리를 구상하지는 않았다. 하동이 좋아서 어쩌다 악양과 인연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6년 동안이나 하동과 도시를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그러다 드디어 일찍 퇴직하고 2년 전 빈집을 하나 빌려 눌러 앉았다. 빌린 살림집 앞에는 예전에 외양간으로 쓰던 헛간이 있었다. 안에는 쓰레기가 산같이 쌓여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일단 청소부터 시작했다. 점점 8평 남짓한 공간이 드러나면서 상상은 나래를 펼쳤다. 한때 사진에 몰두해 전시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외국 여행 중 작은 마을에 있던 갤러리에 감동했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이 사람 저 사람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공간을 깨끗이 치우고 꾸몄다.
소를 먹이던 여물통 자리도 그대로 살려 구멍을 메우지 않았다. 아마도 나중에 쓸모가 있을거란 생각에서였고 가능한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해서 외양간은 갤러리 ‘빈산’이 되었다.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장윤희 갤러리 빈산 관장
크지도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은 아담한 갤러리 ‘빈산’은 3월에 개관전을 열었다.
‘텅 : 우리들의 블루스’란 제목으로 ‘심명희 초대전’을 기획했는데 반응은 예상외로 폭발적이었다. 산골에 있는 갤러리가 궁금해 의외로 많은 사람이 와 봤고, 그들은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외양간의 변신에 놀랐고 전시된 작품에 감동했다. 이 공간을 좋아하는 작가들은 자기 책으로 도움을 보태기도 했다.
정태춘의 노래 ‘빈산’에서 갤러리의 이름을 차명했다는 장윤희 관장에게 ‘빈산’이 무어냐고 물으니 기타를 가져와 직접 장태춘의 ‘빈산’을 노래한다. “어쩌면 ‘빈산’은 정태춘의 노래 <빈산>처럼 ‘해는 산 너머 아주 져버리고 붉은 노을 자락 사위어 가’며 처연하게 맞이할 우리 삶의 끝자락일지 모른다. 하지만 각기 다른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 바다에 이르는 섬진강마냥 저마다 곡진한 삶이기에 어느 것 하나 버릴 데가 없다. 비록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졌을지라도 함께 잡아주고 버텨주는 손길이 있어 오래도록 어우러지고 더불어 빛날 수 있는 춤사위, 우리들의 블루스다”(개관전 기획취지 글 중에서)
장 관장은 ‘빈산지기’란 이름으로 불리길 좋아한다. ‘빈산’을 뜻있는 작품과 사람으로 가득 채울 꿈에 몸과 마음이 쉴 틈이 없다. 갤러리 ‘빈산’은 전국에 있는 ‘작은’ 갤러리들과도 소통과 연대의 네크워크를 만들어 순회 전시와 교육 등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다.
“‘빈산’의 ‘텅 빔’은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한 상태를 말한다”고 그녀는 덧붙인다.
갤러리 빈산은 2차 기획으로 5월 하동군에서 열린 세계차엑스포에 맞춰 “텅ː 빈 잔에 차 다茶”라는 주제로 7인의 작가 초대전을 개최했다. 엑스포는 끝났지만 갤러리 전시회는 7월 14일(금)까지 계속된다. 참여 작가는 다음과 같다. 제50회 대한민국 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성광명(목다구), 신동엽창작상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시인 이원규(사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이수자 소순근(전통각자), 세종 <금사요> 대표 신경환(다기), 충북사진대전 초대작가 심명희(사진),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초대작가 이은정(회화), 서암전통문화대상 수상 전남도립미술관 개관 특별전 초대작가 조병연(수묵). 태령제다(악양 소재)와 함께 하는 ‘다회(茶會)’도 예약을 받아 격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열린다.
예술은 인간이 자연을 사모하여 자기 방식대로 흉내 낸 또 다른 제2의 자연이 아닐까. 외양간이 갤러리로 변신하듯 빈산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었다. 에드워드 호퍼와 클림트와 뭉크의 그림이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갤러리에 전시되지 말란 법은 없다. 지리산 골짜기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을 보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면 그것이 소통이고 관광이고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