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요가안내자
그는 순천, 나는 서울. 국제자원활동을 하다 만난 그와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버스로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4년 정도 거의 매주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다행인지 탈 것에 실려 이동하는 시간을 좋아했던 나는 매주 금요일이 되면 오전 강의만 듣고 종종 걸음으로 캠퍼스를 달려 나와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간식 하나를 챙겨 버스에 앉아 아끼는 책을 음미하며 읽는 시간은 달콤했다.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언제는 초록 들판이, 언제는 황금빛 산등성이가, 언제는 보랏빛 하늘이 눈을 사로잡았다. 버스는 달리고 있었지만 나의 시간은 한없이 늘어져 공상에 잠기기에 충분했다. 그때였을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속도로 사는 삶을 꿈꾸게 된 것은.
돈이 없던 우리는 만나서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손을 잡고 걷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그렇게 걸은 골목길 틈에서 하염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걷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작은 것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돌 틈 사이 핀 그 계절만의 꽃, 누군가의 낙서, 막 태어난 새끼 고양이... 어느 날엔 그가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 행복해!”라는 말이 눈물과 함께 터지고 말았다. 마치 바람을 처음 알게 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자전거는 내게 행복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이십 대 초에 겪어야만 하는 방황의 파도를 넘고 나서, 나는 착실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최저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정기적으로 몇 백은 받는 월급쟁이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의 장거리 연애는 변함이 없었다. 서울 생활을 점점 더 답답해 하던 내가 주로 순천으로 가곤 했는데, 그 길은 조금씩 바뀌었다. 일반 버스에서 우등 버스로, 우등 버스에서 기차로.
이제는 퇴근을 하고 종종걸음으로 용산역으로 향했다. 넓은 플랫폼은 더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렸고, 부딪히지 않으려면 나는 더 종종걸음으로 다녀야 했다. 처음 KTX 표를 끊고 순천으로 갈 때는 ‘어른이 된 건 이런 건가?’하는 울렁거림에 멍하니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봤던 것 같다. 그렇게 공상에 잠길 뻔한 것도 잠시, 돈은 많아졌지만 시간은 줄어든 여느 어른처럼 나는 밀린 연락과 업무를 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똑같이 초록 들판이, 황금빛 산등성이가, 보랏빛 하늘이 아른거리고 있었지만 백열등 아래 백색 소음으로 꽉 찬 열차칸에서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았다. 매끄럽게 달리는 기차는 나를 소리 없이 빠르게 어린 시절로부터 떨어뜨려주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급하면 체하는 법. 더욱 빨라지고 시끄러워지는 주변의 속도에 속이 얹혀서,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기로 했다. 꼬깃꼬깃 접어 넣어두었던, 자전거를 타는 조용한 마을 생활을 적어둔 꿈 조각을 꺼내들고서. 그러나 공상과 현실은 달랐다. 나는 도시에서도 타지 않던 자동차를 타는 삶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열악한 버스 배차 간격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읍내에서도 차키를 챙기는 습관이 생겨버렸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게 네게 알맞은 속도겠지.’하며 받아들이라는 속삭임도 들려오지만, 그때마다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두 발에서 네 바퀴로 바뀌면서, 나의 길은 골목길에서 차도로 바뀌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이 사실이 가장 가슴 아픈데) 마주치는 것들이 있다. 고양이, 오소리, 두꺼비, 고라니, 강아지, 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어떤 생명... 기차보다 훨씬 쾌적해진 차 안에 앉아서, 내가 다니는 길의 이면을 눈앞에서 생생히 관람하게 된 것이다. 골목길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가 이 고양이였을까? 우리는 트렁크에 삽과 장갑을 싣고 다닐 수밖에 없었고, 사체들을 마주할 때마다 운이 좋으면 길가로 옮겨줄 수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가 빠르게 잘라가 버린 것은 나의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쫓기지 않게 꿈꾸고, 세심한 자연을 느낄 여유를 갖고, 두 발로 걸으며 어디든지 길로 만들던 용감한 어린 시절 말이다. 어떤 존재로부터는 온전한 생명을 앗아가 버린다. 소리 없이 매끄럽게. 그래서 ‘빠르게, 빠르게!’를 외치는 어떤 흐름들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것이 무엇일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다시 걷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것이 나와 도로 위에서 죽은 어떤 생명들의 존엄을 되찾는 길이지 않을까. 걸어라,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