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희. 악양면 주민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그녀의 작품 중 <채식주의자>만 겨우 읽은 나로선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은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조정래 작가가 <한강>, <아리랑>, <태백산맥>을 통해 시대의 아픔 속에서 개인이 겪게 되는 어쩔수 없는 시련을 집필했듯이, 한강은 남다르게 깊은 공감 능력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5·18 광주와 4·3 제주를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정래 작가의 역사의식, 시대의식을 다시 보는 듯하다.
책을 읽기 전에 유튜브 ‘일당백’이란 프로를 통해 한강의 <소년이 온다> 1, 2부 방송을 근 2시간 가까이 들을 수 있었다. 소설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광주시청에서 마지막으로 사망한 중학교 3학년생 동호의 엄마가 하는 독백은 감정선을 자극해 저절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섬세한 공감 능력의 극대화를 보여주어 꽤 긴 프로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현자들이 사랑을 얘기하고 ‘나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얘기하지만 우리 사회는 상대방과 가슴으로 서로를 느끼는 공감 능력을 가진 이들을 발견하기가 점점 쉽지 않다. 상대방의 아픔을 느끼지 않고서야 사랑이 나올 수가 없다. 가족이 아파도 내 탓보다는 너의 탓이고 사회가 온통 아프다고 해도 나의 일이 아닌 그들의 일일 뿐, 나만 괜찮으면 문제없다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 흔히 보고 있다.
5·18 광주도, 4·3 제주도, 세월호도, 이태원도 모두가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일 뿐 관심을 가지고 같이 아파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다 보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점점 살맛 안 나는 사회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멋과 향기를 느낄 수 없듯,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흔한 메마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마치 가뭄에 비가 내린 듯 이 메마른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들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광주시민이 희생자 시신에 왜 태극기를 덮었는지?
광주시청에 집결한 시민군이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며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 힘이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며 나와 내 주변인들의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