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1. 갈사만 제철소와 IMF
수천억 원을 들였지만 10년 넘게 버려진 곳.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곳. 어떻게든 성공시키겠다는 ‘거짓말’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곳, 갈사만 조선산업단지이다. 갈사사태의 주요 사건과 소송을 꼼꼼히 살펴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갈사체크,이건 이렇습니다’ 연속기사를 통해 살펴본다.
현대그룹의 하동 프로젝트
먼저 현대그룹의 ‘갈사만 제철소 건설계획’을 알아야 한다. 1996년현대그룹은 제철소를 짓겠다고 발표한다. 후보지는 전북 군산, 충남 서산, 전남 여수, 경남 하동이다. 모든 곳이 제철소 유치에 나섰다. 당시 하동군에서는 ‘현대제철 유치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10월, 현대그룹은 하동에 제철소를 짓기로 한다. 바로 ‘하동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정부는 철강제품이 너무 많이 생산되는 것을 우려하여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현대그룹의 제철소 건설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다. 그럼에도 현대그룹은 제철소 짓는 일을 이어나가기로 한다.
1997년 10월 28일, 경상남도와 현대그룹은 제철소 건설 기본합의서를 맺는다. 11월 19일 현대그룹은 정부에 제철소 건설 신청서와 서명용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12월 9일 정부는 ‘제철소 신규 건설 불가’방침을 밝혔다. 그럼에도 현대그룹은 ‘고로제철소 추진 특수팀’을 만들고 설계도와 축소 모형까지 만들었다. 타당성 용역을 실시하고, 직원들을 하동에 보내 땅을 사들일 계획도 세웠다. 공사 시작만 남았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IMF
“외환 확보를 위해 국제통화기금을 활용하겠습니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199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의 일부이다. 한국 경제가 IMF의 관리 아래에 들어갔다. 1998년 2월, 현대그룹 정몽구 회장은 “외환위기 때문에 하동에 제철소 짓는 게 힘들 것 같아. 다음 기회에 하지…”라고 했다.
여기까지가 1996년부터 2년 동안의 하동 프로젝트이다. 현대그룹의 하동 프로젝트는 사라졌지만, 이것을 원형으로 ‘갈사만 조선산업단지 조성사업’이 만들어졌다
거짓말의 씨앗, 하동군의 설레발
1996년 현대그룹이 하동 프로젝트를 발표하자마자, 하동군은 ‘금남면에 신도시 건설과 금성면 갈사에 산업단지를 짓는 계획’을 발표한다. 이 발표가 바로 갈사사태의 시작이다. 다음 호에서는 갈사사태의 시작인 갈사만 조선산업단지 조성사업에 대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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