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전국동시 조합장 선거가 지난 3월 8일 끝났다. 조합장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와 더불어 ‘4대 선거’로 불린다. 다른 3개 선거와 달리 공직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님에도 중앙선관위에서 선거사무를 위탁관리하는 이유는 조합장의 권한이 풀뿌리 지역경제를 좌지우지할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하동 관내의 이번 조합장 선거 결과는 다음 [표]과 같다.
[표] 하동 지역조합장 선거 결과
조합장의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
2023년 대한민국 예산은 638.7조 원이다. 반면에 전국 1346개 농·수·산림조합의 조합장이 주무르는 금융자산은 대한민국 한 해 예산보다 많은 778조에 이른다. 전국 1114개 농협의 금융자산이 700조 원, 90개 수협은 68조 원, 142개 산림조합은 10조 원 규모다.
조합장은 임기 4년간 해당 지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자금을 관리하는 권한은 물론 농산물 유통과 판매까지 조합장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게다가 수십 명에 이르는 직원의 임면권, 예산편성권은 물론 정부보조금 지급 등 각종 사업에서 전권을 행사해 “조합장이 어지간한 정치인이나 공공기관장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우도 상당하다. 조합의 규모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조합장의 평균 연봉은 통상 1억 1천만 원 수준이다. 업무추진비 등 수당은 별도이고, 운전기사와 차량을 제공받기도 한다. 또한, 조합장은 연임이 3선까지만 가능한데, 자산규모가 2500억 원을 넘는 지역조합은 비상임 조합장을 둘 수 있고 이들에게는 연임 제한 규정이 없다. 연임 제한이 없는 비상임 조합장들은 3~4선은 기본이고 10선을 넘는 종신·세습형 조합장까지 나오기도 한다. 전국에서 비상임 조합장을 두고 있는 지역농협은 462개로 전체의 41.3%를 차지한다. 하동에는 아직 비상임 조합장은 없지만, 지리산청학농협이 자산규모나 정관에서 비상임 조합장을 선출할 요건을 갖추고 있다.
조합장 선거는 돈 선거, 깜깜이 선거
조합장 선거는 ‘과열, 혼탁, 금권선거의 끝판왕’으로 여겨져 왔다. 조합원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선거인단 규모가 작고, 혈연·지연이 강하게 작용하는 농어촌 지역의 특성상 유권자 매수가 쉽기 때문이다. “조합장 선거는 5당4락(五當四落, 5억을 쓰면 당선, 4억을 쓰면 낙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이유다. 이번 하동조합장 선거에서도 ‘누구누구가 똘똘 말은 30만 원을 받았다’는 식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조합장 선거가 이렇게 혼탁해진 이유 중 하나는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선거운동 자체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위탁선거법’ 때문이다. ‘위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운동은 오직 출마자 본인만 가능하며 공개토론회나 합동연설회도 할 수 없다. 공직선거와 달리 예비후보자 제도가 없고, 전화 홍보팀을 운영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금지된다. 병원, 종교시설 등 실내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고 조합원 집을 방문할 수도 없다. 유권자가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은 한차례 발송되는 투표안내문과 선거공보물, 문자발송이 전부다. 공개적인 후보검증의 기회가 막히면서 조합장 선거는 ‘돈 선거’, ‘깜깜이 선거’로 얼룩지고 있다.
제3회 전국동시 조합장선거 역시 ‘깜깜이 선거’로 치러지면서 선거제도 개선을 비롯해 ‘농협법’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는 ‘조합 선거법’ 개정에 뒷짐을 지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준하여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허용하고 비상임 조합장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수년째 낮잠만 자고 있다. 농어촌이 지역구인 여야 의원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조합장들의 눈치를 보면서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조합장 선거보다 그 이후가 중요하다
“농협이 바뀌어야 농촌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농어민과 농·수협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으며,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어촌 현실에서 농·수협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 제대로 된 조합장을 선출하고 그 조합장이 제 역할을 하기만 해도 농어민 조합원의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조합장 선거가 끝난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조합장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고 격려하는 농어민 조합원들의 역할이다.
누가 뭐라 해도 농·수협의 주인은 농어민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과서적인 답변일 뿐, “지역조합은 농어민 위에, 중앙회는 지역조합 위에 군림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농어민들이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되어 지역조합을 변화시키는 노력이다. 조합장 선거보다 그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