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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일제의 밀정 김재영

하동군과 하동군민의 서훈 취소 노력이 필요하다

일제의 밀정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것은 물론 하동군 ‘독립공원’에 버젓이 독립유공자로 기록되어 있다. 1995년 보훈처는 하동군 화개면 출신의 김재영(일명: 김호)에게 중국에서 ‘의열단과 청년동맹회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김재영은 이후 학계의 연구와 언론의 추적을 통해 일제의 밀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서훈 취소나 독립유공자 명단 삭제 등의 조치가 없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사진(좌)] 하동군 화개면 출신의 의열단원 김재영(金縡濚, 1892~?) 1995년 보훈처가 자체 발굴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으나 이후 일제의 밀정임이 밝혀졌다. [사진(우)] 1926년 재한구(한커우) 일본 총영사관이 조선총독부에 보낸 기밀문서. 밀정 김재영의 밀고 사항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KBS <밀정> 2부작 화면 캡처)

김재영, 의열단 활동을 밀고한 밀정임이드러나

의열단은 1920년대 단장 김원봉을 주축으로 일제 고관 암살, 일제 식민통치기관 폭파 등 대담한 무력투쟁을 벌였던 대표적인 무장독립운동단체이다. 부산·밀양경찰서장 암살, 조선총독부·일본 황궁 폭파 시도 등 의열단의 활동은 아나키스트(2000), 암살(2015), 밀정(2016)등의 영화를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의열단에서 암하며 의열단의 기밀을 낱낱이 일제에 밀고했던 인물이 바로 김재영이다.
“일본총영사관 통역관 오다 미쓰루의 지시에 따라 의열단에 가입해 상해 동지들 사이를 왕복했다.”, “의열단장 김원봉과 함께 한커우로 왔고, 김원봉은 북경을 거쳐 광동으로 갔다.”,“상해조계 31공학에서 의열단 회의가 개최될 것이다. 참석자는 40-50명이다.”(재한커우 본영사관이 김재영의 밀고내용을 조선총독부에 보고한 기밀문서)
비밀결사였던 의열단의 여러 활동 중 박재혁, 최수봉, 김익상 같이 개별 단원들의 단독투쟁은 성공을 거둔 반면, 여러 명이 참여하는 큰 규모의 작전들이 최종 단계에서 무산되거나 일망타진 당한 데에는 김재영 같은 밀정의 기밀누설이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이 학계의 판단이다.

밀정행위 이후에도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아

의열단에서의 밀정 행위를 전후로 김재영이 보여준 행적도 부도덕하고 방탕하기 그지없다.
1924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일본총영사관 순사부장 나까가와 및 총영사관 주재 조선총독부 통역관 오다 미쓰루와 접촉하여,‘빚 갚을 돈을 빌리는 조건으로 밀정 계약’을맺었다.
1925년 여름, 오다 미쓰루의 지시로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6년 11월 오다 미쓰루에게 여비 100원을 받고 한커우로 가서 ‘의열단원들의 동향을정탐’하였다. 돈이 떨어지자 ‘여관비를 빌려달라며 일본총영사관을 찾아가, 본인이 밀정임과 그간의 경위를 진술’했다.
1931년 5월 ‘총기·아편 밀수 및 금전 편취’등의 행위로 한커우 일본총영사로부터 3년간 중국재류금지 처분을 받았다.
1932년 9월 귀국하여, 이듬해 5월부터 경남 진주에서 ‘마작구락부를 경영’했다.
1934년 3월 중국 톈진으로 건너가 ‘아편 밀매’를 하다 실패한 후 귀국하였다.
1935년 6월 대구에서 배회하며 소일하다 ‘부랑자로 검속’ 되었다. 같이 구금된 김덕원(金德元)에게 중국 항저우의 육군비행학교입학을 주선하는 ‘사기성 소개장’을 써준 혐의로 지명 수배된 후 중국으로 갔다.
1936년 5월 중국 안둥현에서 ‘댄스홀 설립’을 위해 체재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강제귀국’당한 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석방되었다. (이상 <위키백과> 참고)
이후의 행적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재영에 대해 유족의 신청이 없었음에도 자체 발굴을 통해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보훈처도 하동군청도 관련 단체도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2019년 KBS ‘밀정 2부작’, 학계의 연구 등을 통해 김재영이 반민족 행위를 한 일제의 밀정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여전히 김재영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로 보훈처, 하동 독립공원 기념비, 민간단체가 발행한 <105주년 3·1절 기념>책자에 하동을 대표하는 독립유공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전혀 몰랐어요. 하지만 이 문제는 보훈처의 소관이라 저희가 따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는 것 같아요. ”
“이 문제를 알고는 있었고 여기저기서 연락도 받긴 했지만, 보훈처에서 다른 판단을 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어요. 우리는 서훈 취소 신청 같은 건 생각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밀정 김재영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관련자들의 답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