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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를 생각하는 밥상

정성을 담은 밥상은 매일을 축제로 만든다
유난히 길었던 가을. 그만큼 축제들도 길게 이어졌다. 면마다 열린 체육대회로 시작해서 하동군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축제, 지역민들을 끈끈하게 엮어준 잔치, 외지에서도 찾아오게 만들었던 큰 행사까지. 나는 그 축제들에 면민으로, 소비자로, 기획자로, 사회자로 참여하며 무대 안팎을 즐길 수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어린이, 할머니, 너나 할 것 없이 둘러 앉아 푸짐하게 나눠먹는 밥상에 마음이 넉넉해졌었다. 또 어떤 곳에서는 몇 백 명이 오고 간 행사의 음식을 전부 다회용기에 담아내는 것을 보며 절로 박수가 나왔다.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수준 높은 공연들도 줄기차게 본 덕에 이번 가을은 참 배가 불렀다.
그런데 축제가 끝나고 난 뒤는 언제나 쓸쓸한 걸까? 뒤를 돌아 점점 행사장에서 멀어질수록 허전함이 밀려왔다. 뭔가 빠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그렇게 몇 차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걷다가 발견한 단어는 환대였다. 그래, 환대! 반갑게 맞이해주는 표정과 정성 어린 손길 말이다. 크건 작건 간에 화려한 깃발들이 나부끼는 축제에서는 가을볕을 닮은 따듯함은 아쉽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 언제 환대를 느껴봤을까 곰곰 되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은 처음 환대를 배웠을 때였다. 내게 인문학을 알려준 선배는 어느 날 수업에서 스테이플러 찍는 법을 알려줬다. “스테이플러 찍는 법은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지. 첫 번째, 막 찍는다. 두 번째, 보기 좋게 찍는다. 세 번째, 받아 보는 사람이 넘기기 쉽도록 방향과 각도를 맞춰 찍는다.” 와, 스테이플러를 찍을 때도 받는 사람을 생각한다고? 그 생각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그 바람에 나는 선배의 후임이 되어서 일을 하게 됐다. 그리고 받은 첫 째 날의 업무도 비슷했다. 보는 사람의 눈높이와 간격을 고려해 포스터를 붙이는 일, 손님에게 차를 낼 때 잔을 미리 따뜻하게 데우고 찻잔의 손잡이를 손 가까이에 내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이든, 몇 사람이든, 손님이 오기 전 방을 쓸고 닦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온전히 그들을 생각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그리고 떠오른 다음 장면은 동네 이웃 부부의 모습이다. 작은 민박집을 하는 그들은 종종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한다. 맛있는 음식에 맛있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매번 깊은 밤이 되곤 하는데,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그 둘은 집 밖까지 나와 배웅을 한다. “추운데 나오지 마요!”라고 말해도, 싱긋 웃으며 따라 나와 차가 떠날 때까지 뒤에서 손을 흔들어준다. 단 한 번도 빼먹은 적 없이 활짝 웃으면서. 어둡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와야 하지만, 다정한 얼굴들이 맴돌아서 그 길은 전혀 허전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이런 생각, 이런 몸짓을 축제에 녹여낼 수는 없는 걸까? 머릿속으로 ‘환대’와 ‘축제’라는 단어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아니? 이게 뭐람? 지금 이 모든 생각을 굴리고 있는 내 앞의 점심밥에서는 환대를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 다니면서 일 하느라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대충 꺼내서 무슨 음식인지도 모른 채 우걱우걱 씹고 있는 꼴을 보니,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나도 대접해주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무슨 수로 대접해준단 말인가? ‘아무리 많은 도움을 주고 싶더라도, 무지하면 선보다 해를 더 많이 줄 수 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우선 이 몸과 마음에 정성을 다하자. 저녁은 정성스레 차려 먹어야겠다.

민주

요가안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