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대응기금’은 중앙정부가 ‘인구감소 및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자 마련한 정부출연금으로 2022~31년까지 매년 1조 원씩 총 10조 원을 지방정부에 차등 배분한다. 이 자금은 소멸위기에 처한 지자체가 스스로 ‘인구감소와 지역쇠퇴의 원인’을 진단하고, ‘위기에서 벗어날 책을 개발하고 집행’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하동군은 올해 ‘우수’ 등급으로 평가를 받아 160억 원의 지방소멸 대응기금을 확보했다. 이에 하동군은 올해 4월 22일부터 5월 2일까지 <하동군 지방소멸 대응기금 투자계획 수립 주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번 주민설문조사 문항을 살펴보면, 군청이 지방소멸 대응기금을 목적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설문조사가 ‘군청의 정책을 합리화’하고, ‘지지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실시했다는 의심이 든다는 점이다.
설문조사가 군 정책합리화를 위해 군민들을 활용하려 했다고 의심하는 이유
지방소멸 대응기금이 사용된 ‘예쁜 거리’ 조성사업으로 만들어진 화단
이런 의문은 군청이 배포한 설문 문항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설문 질의를 요약해 보면 △거주지 주변에 쾌적한 ‘정원이나 휴식 공간’이 충분한지 △‘정원 또는 자연 친화적 공간’이 늘어난다면 정주 만족도가 얼마나 높아질지 ‘공원, 정원 등’이 있다면 얼마나 이용할지 △‘정원 조성’이 지역 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될지 △‘정원 등’이 많아진다면 하동에 계속 거주하고 싶은지 △‘자연 친화적인 공간’ 조성 후 추가적으로 원하는 시설은 무엇인지 △‘자연 친화적인 공간’ 조성 후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할지 △원하는 관련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하동읍 ‘예쁜거리 조성사업’에 대해 아는지 △‘예쁜거리 조성사업’이 필요한지 △‘예쁜거리 조성사업’의 추가 희망지역이나 추진방향은 무엇인지 등, 11개 질의에서 ‘자연친화적 정원 및 예쁜거리’ 조성사업에 대해 반복적이고, 집중적이고, 집요하게 묻고 있다. 어딘가 이상하다.
총 17개 문항 중 11개(약 65%)가 소위 ‘자연친화적 정원’ 및 ‘예쁜거리’ 조성 등 건축·조경 사업과 관련된 질의다. 1~5번까지는 성별, 연령, 거주지, 거주기간 등 설문을 위한 기초질의이고, 6~16번까지의 질의는 모두 ‘정원’과 ‘거리’ 조성 사업과 관련된 질의다. 이렇게 편향된 설문조사 항목을 보면, 군청이 이미 내정한 ‘자연친화적 정원’ 및 ‘예쁜거리’ 조성 사업을 진행할 목적으로, 형식적으로 군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지방소멸’의 해결책이 과연 ‘자연친화적 정원’이나 ‘예쁜 거리’ 조성사업일까?
지난 2024년 3월 27일 하동군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하동군은 2025년 지방소멸 대응기금 투자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2024년 2월 내외 군민 152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내외 군민들은 하동군의 생활 인구 감소 원인으로 ‘일자리 부족’과 ‘건강 및 의료시설의 부족’, ‘공공의료기관의 부족’을 지목했다. 특히, ‘보건 및 의료 서비스 개선(67%), 양질의 일자리 제공(56.5%), 출산 및 육아 환경 개선(39.1%)’이 문제 해결을 위한 선결과제라고 응답했다. 생활 만족도 항목에서는 ‘보건·의료 분야’와 ‘주거 및 교통 분야’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으며, ‘의료시설 부족’을 가장 큰 불만 사항으로 꼽았다.
작년 2월의 설문결과와 이번 설문조사 문항은, 같은 지자체가 실행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 확인된 여론은 무시한 채 ‘자연친화적 정원’과 ‘예쁜거리’ 조성이라는 생뚱맞은 사업에 초점을 맞춘 이번 여론조사를 시행한 이유가 궁금하다.
하동군은 이런 식의 설문조사를 시행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하승철 군수와 하동군청은 ‘여론몰이’ 혹은 ‘여론조작’으로까지 의심될 수 있는 이번 설문조사를 실시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 여론조사를 설계한 이는 누구인지, 더 중요하게는 지방소멸 대응기금을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