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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희

두 명의 언니가 생겼다. (시골에 오니까 언니들이 많아진다.) 언니들과는 매주 목요일 아침에 모여 반찬을 만든다. 이 모임의 목적은 일주일간 먹을 반찬을 같이 만들어 나눠 갖는 것이다.
처음 수진(둘째 언니)의 제안에 덥석 응했던 것은 요리하는 근육을 붙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걸. 이거 이거... 효율이 아주 쏠쏠하다. 큼지막한 통 서너 개를 근사한 반찬으로 가득 채워 돌아간다. 쪽파장아찌, 두부쌈장, 달래된장국 키트, 구운 두부조림, 세 가지 나물 무침... 매번 다르게 채워간 반찬통은 매일 ‘뭐 해 먹지?’하는 고민이나 요리하는 시간도 훨~씬 줄여줬다. 각 집의 짝지들 (주로 집수리와 농사일을 하는)은 “와- 반찬 모임 계속 했으면 좋겠다!”라며 어쩜 그리 똑같은 대답을 터뜨렸는데, 언니들과 나는 한쪽 입꼬리만 슬쩍 올리며 피식 웃어주었다.
손맛 좋은 언니들에게 한 수 요리를 배우러 간 것이지만, 큰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밭과 뒷밭에서 냉이, 고사리, 두릅, 방아잎, 상추를 잔뜩 캐고, 끊고, 따고, 뜯어와 맛간장 얼~추, 매실액 쬐~끔, 참기름 둘둘~ 그리고 조물조물... 끝! 쪽파가 집 마당에 턱턱 쌓여갈 즈음엔 부침가루를 넣고 몇 판을 부쳐 먹기도 하고, 기력이 좀 떨어진다 싶을 땐 “오늘은 푸지게 먹자!”하며 갈비찜을 한 솥 끓여 세 가구가 둘러 앉아 먹는다. 두 어린이가 함께 사는 집을 위해서 간간히 동그랑땡도 만들어가면서. 꼭 채식을 해야 하는 것도, 50g이든 60g이든 정확한 수치를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손에 쥔 식칼과 식재료에 바짝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마음은 온통... 콩밭에 가 있다.
“얘들아, 나 고민이 있는데 잠시 들어봐 줄래?” 반찬을 만들기 전, 차를 마시다가 성희 언니가 신중하게 입을 뗐다. 전교생이 스무 명 남짓 되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그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에 관한 고민이었다. ‘에이- 애들 싸우면서 크는 거지 뭐-’라고 숭덩숭덩 썰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셋에겐 그 무게가 50g과 100g의 차이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건 나쁜 것이라고 단호하게, 진심으로 얘기해주는 어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 친구와 놀지 말라.’는 어른의 말은 이의 세계를 가두어버리는 것 아닐까?
그 아이는 왜 다른 친구를 아프게 하는 행동을 했을까? 무엇이 결핍된 걸까?
아이들이 갈등에 노출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어떤 장을 더 만들어줄 수 있을까?
어른도 어른됨을 공부해 나가는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재료가 툭툭 올라왔다. 성미 급한 나는 고춧가루를 팍팍 뿌리듯 수차례 말을 내뱉었고, 차분한 수진은 밥솥의 뜸을 들이듯 어떠한 말도 아꼈다.
그리고 각자 방아잎을 따러, 두릅을 다듬으러, 수육을 삶으러 흩어졌다. 손톱 끝에 방아 향과 까만 물과 기름을 잔뜩 묻히고 다시 모였을 때, “근데 있잖아...”하며 누군가가 다시 입을 뗐고 오늘의 주재료로 마음이 모인다. 속닥속닥... 쓰윽쓰윽... 조물조물.... 그리고 다시 두부를 으깨고, 냄비를 씻고, 고추장으로 나물을 버무리다가... “근데 있잖아...”하고 또다시 입이 떨어진다. 수진은 “뭐야~! 다 같은 생각하고 있었잖아?”하며 설탕 같은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이렇게 앉아서 냉이를 캐는 게 민주주의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봄이 성큼성큼 다가오던 무렵, 언니들과 밭에서 나누었던 시간이 겹쳐 보인다. 살림이고 뭐고 지금 당장 광화문 광장으로 뛰쳐나가야 할 것 같았던 시기에, 거리에서 서로에게 핏대를 세우고 손가락질을 하는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벌렁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 끈질기게 고민했더랬지. 냉이가 지천에 깔린 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민주주의, 행복, 이로운 일을 샅샅이 찾아 다녔다. 지금처럼 나는 조금 급하게 씨를 뿌리듯 후두둑- 말을 내뱉으며, 수진은 흙을 덮듯 차분히 말을 아끼며, 성희는 불어오는 바람처럼 가만가만 들으며. 그리고 돌아가서는 각자 광장에서, 모임에서, 가정에서, 마음으로 요리한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것 같다.
‘찬찬희’ 아직은 어색한 모임의 이름. 의미야 만들기 나름이겠지만, ‘희’에서 ‘희망’을 캐내어 요리하고 싶다.
적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