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대항 노래자랑, 명사마을 전옥자 씨
10월 14일 금요일 구름 한 점 없는 청암공설운동장 파란 가을하늘에는 면민 체육대회를 알리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화합 한마당 축제를 겸한 체육대회에는 500여 청암면민들이 코로나로 닫혀있던 대문을 박차고 나온 듯 넓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청암면 체육회장을 맡고 있는 평촌마을 한점우(70) 씨는 “면 구조상 마을이 흩어져 있다 보니 화합의 어려움이 있어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서로 만나기 힘듭니다. 찬조금 제도도 없앴어요. 점점 노령화되어 음식하기도 힘들고 해서 이번에는 점심도 뷔페로 준비했습니다. 음식하느라 애쓰기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와서 하루 즐겁게 지내시라고요.” 라고 노령화되는 마을에 대한 걱정과 배려의 마음을 전했다.
청암면 체육회장 한점우 씨
반면, 평촌마을 산다는 김 씨(78)는 “아침부터 와 앉아서 막걸리도 한잔하고 해야 하는데 줄을 서서 이게 뭐야? 이건 도회지에나 맞지 이런 덴 안 맞아” 라고 뷔페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불만을 털어놓는다. 뒤에 서 있던 할머니는 “오늘 점심 먹긴 틀렸어, 앞에서 다 가져가잖아” 하며 태산 같은 걱정을 늘어놓으시니 그 뒤에 서 있던 분이 음식은 떨어지면 또 나오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심시켜 드린다.
금남마을에 사는 면 부녀회장 정수야(64) 씨는 “일인분 3만 원 잡아 500인분을 준비했는데도 생각보다 많이 오셔서 음식이 좀 모자란 듯합니다. 잔치에는 음식이 남아야 하는데…. 다음에는 예전같이 마을별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뷔페라 해도 줄서기보다는 날라다 주는 음식을 앉아서 드시는 노인분이 대부분이었다.
청암면 부녀회장 정수야 씨
시목마을의 강민선 씨(91)를 비롯해 85세 이상 노인분들 10명에게 “오늘 나오시니 어떠신가?”라고 질문하니 대답이 한결같다. “사람들을 많이 보니 너무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좋지”라고.
보물 낚시게임에 나선 70세 이상 노인들
3년 동안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 정책으로 사람 만나는 일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겪은 이들의 공통된 감회일 것이다. 청학동 oo서당에서 왔다는 청소년 배 군(13)은 같은 서당에서 12명이 같이 왔다며 “이런 행사에는 처음 와 봤는데 여러 가지 구경하는 게 재미있고 떡이 제일 맛있다”라고 얼굴에 환한 미소가 즐거움을 말해 준다.
65세 이상만 참여하는 ‘한궁’이나 70세 이상 어르신만 참여하는 “보물낚시” 게임은 있지만 18세 이하 청소년이나 유아를 위한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쉬워 보인다. 시목마을 ‘다둥이네 집’이라 알려진 6명의 아이 엄마 김연림(39) 씨 부부는 행사장 구석 응달진 곳에 텐트를 준비해 아이들과 편하게 하루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 가족은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모범 가족으로 소개되어 시상식도 있었다.
한가로이 면 체육대회를 즐기는 다둥이네 김연림 씨 가족
50대 중반의 윤은주 씨는 “출퇴근이 없는 생활을 하고 싶고, 50대가 되니 밤에 별도 볼 수 있는 여유로운 자연생활이 좋아요. 건강도 챙길 수 있고 무엇보다 돈도 별로 들지 않아요”라면서 귀촌의 즐거움을 말한다. 귀촌한 지는 몇 년 됐지만 행사는 처음 참여하는데 “많이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명호마을에 이사 오기 위해 집을 짓고 있다는 배정숙 씨도 행사 참여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청암면은 하동군에서 산지가 가장 많고 길이가 가장 긴 면으로 사실상 같은 마을에서도 얼굴 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구도 12개 면 중에서 가장 적은 편으로 816세대, 1399명(2022년 3월)이다. 청암면은 중이리의 금남과 심답마을, 상이리의 나본과 시목마을, 묵계리의 장고, 묵계, 원묵, 학동, 청학마을, 명호리의 명호, 명사마을, 평촌리의 평촌, 화월마을, 5개리 14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날 하승철 하동군수는 청암면을 “관광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암면 하동호에 ‘상상의 다리’라는 명칭으로 건설되는 출렁다리는 청암면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주탑을 세운 총연장 400m, 폭 2m 규모로 총 90억 원 예산으로 2023년 완공 예정이다.
같은 마을에 살아도 일부러 모임을 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이유로 만나기 힘들다. 더구나 3년 동안 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갇혀 지낸 듯한 세월을 보내고 나니 ‘화합’과 ‘소통’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 정도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마을 단위 혹은 면 단위, 더 크게는 군 단위의 행사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소통과 화합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