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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최참판댁이 부자가 된 내력

박경리의 <토지>엔 최 참판댁 ‘축재의 비밀’이 나온다. 최치수의 생모 윤씨 부인을 아씨 때부터 모셔 온 간난할멈이 들려준, ‘살림을 이룬 내력’ 이 그것! 소설이긴 하지만, 현실에서 힌트를 얻은 작품이기에 오늘의 우리에게도 배움이 크다.
흔히 최 참판댁은 ‘만석꾼’ 부자로 통하는데, 살림이 크게 불어난 건 최서희(치수의 외동딸)의 5대조인 최 참판의 모친 때! 참판 모친은 청상과부였는데, “피가 나게 살림을 모아” 끝내 빈곤을 극복했다. 그 옛날 참판 조모가 ‘육경신’ 행사까지 하며 정성을 다한 결과라고도 한다. 결국, 참판 모친, 참판의 며느리, 참판의 증손며느리(윤씨 부인) 등, 대를 건너뛰며 그 여인들이 ‘만석꾼’을 만들었다. 막상 참판 당대나 최씨들은 보통 수준이었다.
그럼 참판 모친은 어떻게 치부했는가? 일례로, 된장 항아리 속에 생긴 구더기를 “장벌렌데 어떠냐”면서 빨아먹고 버렸고, 오밤중에 노비들을 강가로 내몰아 밤새 후리질로 잡은 물고기를 장에서 팔아오게 했다. 추운 겨울엔 안노인이 직접 잠도 안 자고 아궁이마다 불을 못 지피게 눈을 부라렸고, 그렇게 냉방에서 새우잠을 잔 노비들을 새벽에 깨워 나무하러 보내거나 나뭇단을 실어 장에 팔러 보냈다. 또, 메주를 쑬 때는 메주를 밥으로 때웠고, 김장 날엔 김치를 먹는다며 밥을 금했다.
봉기 조부도 자기 어릴 적 기억을 보탰다. 가뭄이 심해 최씨 농장도 큰일이다 싶어 스님을 불러 일종의 기우제를 지냈다. 마침 등짐장사 둘이 지나다 구경을 하는데, 하도 배고파 보여 스님이 밥을 좀 주었다. 그걸 본 할망구가 냉큼 바리때를 빼앗아 밥을 보시기에 붓고는 “이리 날이 가문데 곡식 귀한 줄 모르고 아무한테나 밥을 주느냐.” 했다. 한마디로, 인색한 구두쇠였다!
그러나 이 인색함 외에 ‘민첩함’도 필요했다. 가뭄이 독했던 한 해, 들판은 누렇게 타고 강물은 말라 고기들도 죽어 나갔다. 나라에서 기민미를 냈지만 새 발의 피였다. 길에는 굶주린 시체가 널렸고 들짐승도 우글댔다. 그런 시절, 최씨네 고방에 쌓였던 곡식은 굶주린 농부들의 전답문서와 교환돼, “석 섬 나는 논 한 마지기는 몇 말의 곡식으로 둔갑”했다. 땅보다 당장의 배고픔이 급했다. 이렇게 경제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타자의 재산을 수탈케 해, 부의 집중 및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강화한다.
인색함과 민첩함 외에 ‘철저함’은 더 기본! 최참판댁은 대대로 많은 노비와 일꾼을 직접 부렸고, 때론 땅을 빌려주고 소작료만 받았다. 노동력을 직접 부려 그 밥값 이상의 잉여를 취하는게 ‘노동 착취’다. 소작료만 받는 건 ‘지대 수취’다. 최씨네 농장 운영은 자본주의 공장 운영과 달리 임금 부분과 잉여가치 부분이 잘 구분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꾼들이 자기 밥값 이상의 일을 함으로써 최씨 일가의 부를 불린 것만은 확실하다. 집안 안팎의 일꾼(작인)들이 노동을 성실히 하게 하는 건 고참 마름(예, 김 서방)의 몫이었다. “해마다 애를 믹이는 사람들은 딱 정해져 있다 말이다! (…) 말 마라. 소가 죽었심다. 다리를 뿌라서 일 못했심다. 혼사가 있어 장리빚을 냈심다. 나중에는 무슨 핑계를 댈 기든고?” 이런 식으로 마름이 작인들을 상대로 ‘노동규율’을 잡았다. 나중엔 윤씨 부인이 어린 서희를 데리고 소유 농지 순례를 하면서 “부정을 감지하는 예리한 그의 느낌”을 서희에게 교육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앞으로 며칠을 더 다닐 것이다. 너의 땅을 눈여겨 보아두어야 하느니라.”
이렇게 최씨 일가는 특유의 인색함, 민첩함, 철저함으로 재산을 불렸다. 그러나 “도치기 같은” 인색함은 타자의 원한을 부른다. 예컨대, 자식 일곱 과부의 구걸 애원을 차갑게 거부하자 과부는 “오냐! 믹일 기이 없어서 자식새끼 거나리고 나는 저승길을 갈기다마는 최가놈 집구석에 재물이 쌯이고 쌯이도 묵어줄 사램이 없을긴께, 두고 보아라!”며 저주했다. 그래서인지 최씨 일가는 5대 동안 독자만 키웠고, 마침내 서희로 막을 내려야 했다. 얼마 전까지 청빈한 선비들은 이 마을만 들어서면 강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고래등 같은 최참판댁 기와집을 외면하며 최씨네 신도비에 침을 뱉았다 한다. 과연 우리는 왜, 어떻게 부자가 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