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농번기가 지나고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 오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양파와 마늘 그리고 감자를 수확해야 한다. 밭이 육백 평 정도되지만 실제로 활용하는 것은 이백 평 정도다. 풀 관리가 제일 어렵다. 오직 호미로만 농사를 한다. 무경운·무농약·무비료를 고집하다 보니 일하기 좋은 곳에서만 경작한다.

농촌으로 오면서 쌀과 생선을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우리가 먹는 식재료는 자급하려고 마음 먹었다. 처음엔 욕심내서 모든 채소와 곡물을 심었지만 제대로 수확하기가 쉽지 않았다. 봄철 모종 가게에서 파는 것을 호기심으로 종류별로 심어 보았지만 약을 안 치고는 제 모양의 작물을 키워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크게 농사 기술이 없어도 잘 자라고 잘 기를 수 있는 작물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적은 재료로 다양하게 조리해서 먹는 고민을 한다.
십 년 정도 지나면서 정성을 들이는 작물은 부추, 양파, 마늘. 감자, 옥수수, 강낭콩, 방아, 대파, 쪽파, 들깨, 알타리, 배추, 무, 갓, 오이, 토마토 등 으로 계절별로 혼작과 섞어짓기를 작물 특성을 고려하며 키운다. 그러면 풀 관리도 수월하고 적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예를 들면 겨울에 심은 양파와 마늘밭에 중간중간 감자를 심는다. 양파 수확 할 때쯤 감자가 무성하게 자라 풀이 덜 난다. 냉해 피해도 방지 되는 듯하다.
자급자족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들과 산에나는 푸성귀들인데, 음식 재료로 많이 활용한다. 시금치 대신 망초로 나물과 국거리로 하고 독성이 약한 냉이, 보리뱅이. 지칭개. 씀바귀, 머위는 소중한 식재료다. 가능하면 살짝 맛보고 웬만한 들풀은 먹으려고 한다. 이른 봄 대부분 어린 싹들은 맛있는 샐러드 재료가 된다. 환삼덩쿨, 돌나물, 명아주, 광대나물, 봄까치꽃 등 눈을 잘 마주치면 먹을 것이 지천이다. 애써 가꾸지 않아도 얻는 게 참 많다. 소농으로도 풍성한 자연 재료를 활용하면 자급경제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감자를 수확하고 있는 김옥랑 씨
현대인은 은퇴 후에도 활동 에너지가 넘친다. 여행과 사색으로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의 숨소리와 더불어 자급경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도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고사리와 봄나물이 또 다른 연금이다. 특별한 농사 재주가 없으니 산에서 자라는 고사리와 취나물이 수월하다. 잡목과 풀관리가 초기에는 어렵지만 3년 정도 정성을 들이면 보답을 한다. 생산된 수량은 지인들에게 판매하기도 하고 농협 수매에 내기도 한다. 이른 봄 시원한 계절에 두어달 노력하면 자연이 주는 연금으로 알차게 살 수 있다.
고사리는 특히 지인들이 찾아오면 중요한 식재료가 된다. 고사리밥, 고사리나물, 고사리전, 고사리해물찜, 고사리스파게티, 고사리장아찌, 고사리고추장국, 고사리들깨국, 고사리육계장, 생고사리나물 등 계절별로 1년 동안 소중한 반찬 재료로 다양하게 할 수 있어서 정이 듬뿍 간다.
소농은 단품목으로 대량 생산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에 농촌살이가 지루할 틈이 없어서 좋다. 그리고 소농하는 이웃끼리 서로 다양한 식재료를 나누는 것도 즐겁다. 가끔은 동네나 지인들의 일손이 바쁠 때 잠시 거들어 주면 넉넉하게 먹을 것이 생기기도 한다. 농부라는 역할과 의미를 돌봄과 나눔에 두니 마음이 편안하다.